레이첼 하워드 미션 파서블 파트너십 아태지역 총괄은 청정산업 시장을 만드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의 청정사업 선도 잠재력은 매우 높게 평가하며, 배터리와 EPC, 수소 산업에 기회가 있다고 보았다.
[한경ESG] 글로벌 리더 - 레이철 하워드 미션 파서블 파트너십(MPP) 아태지역 총괄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 경쟁은 더 이상 기술 개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는 정부가 얼마나 빠르게 ‘녹색시장(green market)’을 만들 수 있느냐다. 녹색시장의 특성상 부족한 수요를 정부가 이끌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경ESG>는 지난 4월 말 여수에서 열린 유엔 기후주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레이철 하워드 미션파서블파트너십(Mission Possible Partnership, MPP) 아시아태평양 디렉터를 만났다. 레이첼 하워드는 호주인으로서 아시아퍼시픽 지역을 총괄하고 있고, 맥킨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MPP는 유엔 지원 산업 전환 프로그램인 ‘산업 전환 액셀러레이터’ 등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현재 MPP가 관리하는 글로벌 청정산업 프로젝트 규모는 약 1000개, 총 투자액은 약 2조 달러 수준에 이른다.
그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청정산업 파이프라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기대감이 컸다. 다만 정책 측면에서는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실제 투자 단계(FID·최종투자결정)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시장 구조와 정책적 확실성은 아직 구축 단계”라며 “보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가 장기 수요를 보장하는 시장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MPP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MPP는 2019년에 설립된 글로벌 청정산업 발전을 목표로 하는 독립 비영리기관이다. 세계경제포럼과 로키마운틴 인스티튜트 등이 창립파트너이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마존의 베조스 어스 펀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등이 후원자다. MPP는 알루미늄, 시멘트, 화학, 해운, 항공, 트럭 운송, 철강 등 가장 에너지 집약적인 7개 부문에 대한 넷제로 전략을 추구하며 청정 소재 및 청정 화학물질, 청정 연료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 MPP가 추구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MPP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산업 전환 액셀러레이터(Industrial Transition Accelerator, ITA)다. 이는 유엔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청정산업 프로젝트의 금융 조달을 가속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는 현장에서 청정산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부와 협력하여 투자를 위한 시장 조건을 조성하고, 현장의 장벽들을 여수 유엔 기후주간에서의 회의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UNFCCC COP)와 같은 다자간 수준으로 끌어올려 해결하고 있다.”
- ‘산업 전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의 주요 애로점이 궁금하다.
“최소 6개국 이상에서 협력 중이며, 현지 정부 및 실제 프로젝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두 가지 유형의 업무를 수행한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 파이프라인과 소통하여 최종투자결정(FID)이라는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이는 때로는 청정에너지 접근성 문제이고, 때로는 해외 수요처 확보 문제이며, 때로는 자금 부족이나 정책 불확실성 문제다. 우리는 기술 중심 조직으로서 금융 플랫폼과 연결하여 개발 자금이나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두 번째는 투자 조건이다. 대개 정책 메커니즘을 살피는 일인데, 해당 국가의 기후부나 산업부와 협력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지 확인한다.”
- 한국 기업은 어떠한 청정산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나.
“전 세계적인 청정산업 파이프라인 가운데 한국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중공업 기업이다. 현재 약 1000개의 중공업 프로젝트가 있으며, 이는 개별적으로 수십억 달러, 총합 2조 달러 가치의 투자 규모다. 이 파이프라인에서 한국의 위치를 보면 선진적(advanced)이라고 본다. 한국 국내에만 MPP 추산 30억 달러 가치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6개 이상 있다. 구체적으로 LG화학, 한화, SK이노베이션 등이 추진하는 5개의 지속가능항공유(SAF) 프로젝트가 있고,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HyREX) 및 철강 제조를 위한 전기로(EAF) 프로젝트도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한 기업의 글로벌 확장성이다. 한국의 설계·조달·시공(EPC)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건설하고 있다. 글로벌 청정 파이프라인 전반에 한국 기업의 산업적 기여가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고, 한국은 큰 야심을 보여주고 있다.”
- 청정산업 전환을 돕는 한국 정부의 정책적 측면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을 정책적 측면에서 선도 국가(front-runner)로 부르기에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야심이 추진되고 있다고 본다. 국내 산업 부문에 필요한 대규모 청정 제조 및 청정에너지 배치를 가능케 할 시장 구조(market architecture)는 아직 구축 단계에 있다. 특히 대규모 자본 지출(CAPEX)이 필요한 중공업 분야의 최초 프로젝트들이 투자 준비를 갖추고 확실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 금융 가능성(bankablity) 지원책이 필요하며, 투자 안정성 확보와 초기 프로젝트에 대한 정책 지원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한국의 녹색전환(K-GX)에서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 호주는 국가 중심의 청정산업 전환의 일환으로 ‘전환산업 보조금 패키지(Future Made in Australia)’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호주의 이 정책은 220억 호주달러 규모의 대규모 산업 패키지다. 국가적 프레임워크에 따라 우선순위를 지원한다. 핵심 특징은 특정 산업에 대한 전략적 선택 지원이다. 수소 생산에 kg당 2달러를 지급하는 세액공제와 핵심 광물 생산에 대한 10% 세액공제 등 생산 기반 지원에 중점을 둔다. 또 재생에너지 발전의 최소 가격을 보장하는 ‘용량 투자 제도(Capacity Investment Scheme)’와 대규모 공용 송전 인프라에 저리 대출을 제공하는 ‘리와이어링 더 네이션(Rewiring the Nation) 프로그램’이 있다. 또 수소 프로젝트를 위해 약 35억 호주달러 규모로 시장 가격과 생산 단가의 차액을 직접 지원하는 차액결제거래(CfD) 형태의 수소 헤드스타트 제도도 운영한다.”
- 호주의 선택적 지원 접근 방식에 대해 산업 간 반발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산업단체와 정책 기관들은 시장 실패로 인해 민간 투자가 국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표적 지원의 논리를 인정했다. 호주 정부는 어떤 산업이 공공 지원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국가이익 프레임워크’를 통해 이 문제를 관리하려 했다. 이 프레임워크는 우선 산업을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넷제로 글로벌 경제에서 호주가 비교우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를 위한 ‘넷제로 전환 스트림’이고, 다른 하나는 회복력 또는 안보를 위해 일정 수준의 국내 역량이 필요한 분야를 위한 ‘경제 회복력 및 안보 스트림’이다. 최근 산업계의 불만은 대부분 실행 문제에 관한 것이었으며, 지원 대상 산업들 가운데 실제 프로젝트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 정책 발표 후 호주의 민간 투자는 실제로 활성화됐나.
“호주에도 현재 약 70개 프로젝트가 개발 중이며, 이는 약 2900억 호주달러 규모의 핵심 탈탄소 프로젝트다. 이 중 53개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방식과 비교해 70~80% 이상의 배출 감축이 가능한 핵심 탈탄소화(critical decarbonisation) 프로젝트다. 나머지는 회색 암모니아에 대한 것으로 부분적 탄소포집, 스크랩 철강 생산 등 점진적 감축 프로젝트다. 아쉽게도 호주 역시 여전히 최종투자결정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금 지원책이 있어도 프로젝트가 투자 가능 수준(investable level)에 도달하지 못해 자금이 흐르지 않는 것이다. 보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호주는 이제 ‘수요 확실성(demand certainty)’ 창출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자금 지원보다 시장이 먼저 형성되어야 프로젝트가 투자 준비를 마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럽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 유럽의 경우는 어떠했나.
“민간 투자는 시장이 신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할 때만 움직인다. 각국 정부는 단순한 보조금 정책보다 녹색 시장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럽 시장은 저탄소 철강 수요를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그린 딜과 같은 정책은 물론 최근 발표된 ‘청정산업 전환 촉진법(Industrial Accelerator Act)’에서 유럽산, 즉 ‘메이드 인 유럽’을 강조하고 공공 조달 강화, 자동차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그 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제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단순히 탈탄소가 목적이 아니라 국내 산업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수요 창출 기회를 선제적으로 만들고 있다.”
- 민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시장 창출이 가장 중요한가.
“그렇다. 민간 투자를 동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활동은 시장 형성이다. 정부 조달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비중은 아직 낮다. 민간이 믿고 투자할 수 있는 ‘규제 준수형(Compliance Grade)’의 신뢰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 조달 약속, 물량 의무제, 최종 제품의 저탄소 기준 같은 정책들로, 초기에는 작은 요구 수준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녹색 공공조달, 연료 분야에서 배출 기준을 설정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기준을 낮추는 방식, 탄소 배출 기준, 또는지속가능항공유 1% 혼합 의무화 같은 산업별 물량 기반 쿼터를 도입할 수 있다. 시장 자율만으로는 충분한 규모의 수요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제는 철강, 알루미늄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 자동차, 선박, 건설, 그리고 데이터센터 같은 최종 수요 부문을 살펴봐야 한다.”
- 최종 수요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이들 산업은 철강 생산업체는 아니지만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 전력 집약적 인프라의 주요 수요처다. 정부가 이들 산업이 저탄소 소재를 구매하도록 지원하거나 규제할 경우, 생산업체들에게 은행 대출이 가능한 수준의 구매계약(bankable offtake)을 형성할 수 있는 수요 신호를 만들게 된다. 중요한 점은 완제품에서 친환경 프리미엄이 상당히 희석되어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된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의 작은 대체 비율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동차에 저탄소 철강 10%를 적용할 경우 비용 증가는 단지 0.1%, 건물에 저탄소 철강과 저탄소 시멘트 10%를 적용할 경우에도 0.2% 증가에 불과하다. MPP의 최근 보고서는 유럽연합(EU)이높은 에너지 비용과 정체된 청정산업 파이프라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운스트림 산업을 활용해 제조업을 역내에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초기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리드마켓을 이용하는 것은 단순한 조치가 아니라 핵심 산업정책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 호주는 ‘녹색철강 회랑(Green Iron Corridor)’라는 녹색철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은 저탄소 제조 공급망에서 발판을 마련해야 하며, 호주는 에너지와 철광석 파트너로서 이미 중요한 파트너다. 한국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약 300만~400만 톤의 저탄소 철강을 유럽에 공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기적으로는 호주 같은 곳에서 저탄소 원료인 녹색철강 원료를 가져와 한국의 전기로에 넣어 유럽 기준을 맞추는 것이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한국 학계와 싱크탱크의 분석에 따르면 저비용 에너지가 있는 호주와 브라질, 중동 등에서 수소를 활용해 철강 원료를 만들고 이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이 매우 비용 효율적인 경로다.”
- 녹색철강 분야에서 호주와 한국의 협력은 어떻게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까.
“회랑은 양방향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단순히 수입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녹색철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수전해 장치와 전기로 등 에너지 설비, 제철 설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엔지니어링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녹색철강 시장의 기술 및 장비 규모는 400억 달러(약 50조 원)가 넘는다. 한국 제조사들에게는 엄청난 수출 기회가 된다.”
- 한국에서는 아직도 청정 방식이 너무 비싸다는 우려가 있다.
“중공업이나 연료 부문에서 심화된 차원의 탈탄소를 지향할 때 그린 프리미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재들이 수천 개의 최종 제품으로 가면 프리미엄은 매우 작아진다. 예를 들어 3만~4만 달러인 자동차 한 대에서 녹색철강 사용으로 인한 가격 인상분은 수백 달러로 2% 미만이며, 제품에 따라서는 0.5% 미만에 불과하다. 소비자 단계에서 이 프리미엄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작게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확대하면 공급망 상류 부문(업스트림)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낼 비즈니스 케이스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지속가능항공유를 전체 연료의 1%만 혼합하는 방식부터 시작할 수 있다.”
- 향후 한국이 녹색 부문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유망 섹터는 어디라고 보나.
“우선 에너지저장장치(BESS)다. 한국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성공적인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다. 두 번째는 EPC 및 엔지니어링이다. 한국의 세계적인 EPC 기업들은 수소, 암모니아와 같은 복잡한 처리 시설과 신에너지 건설에 필수적이다. 석유화학에서의 경험도 매우 큰 자산이다. 마지막으로는 수소 가치사슬이다. 한국의 미래 핵심 산업이다. 중국이 저비용으로 추격하고 있지만, 한국이 반드시 쫓아야 할 분야이며 ‘이머징 히어로(emerging hero)’가 될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