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싱크탱크 리포트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6년…기업가치 효과는 제자리”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과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도입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화 제도가 시행 6년 차를 맞았다. 정부는 공시 대상 기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했지만 정작 제도 도입의 궁극적 목표인 기업가치 상승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기업들이 실질적인 변화보다는 정해진 요건만 채우는 ‘형식적 준수’에 치중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자본시장연구원 임나연 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화 효과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코스피(KOSPI)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공시 의무화의 실질적 효과에 대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기업들의 지배구조 점수는 외형적으로 크게 상승했으나 이사회 혁신과 기업가치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6년…기업가치 효과는 제자리”


‘점수 인플레이션’의 함정… 주주권리 개선, 이사회는 요지부동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 의무화는 기업들의 지배구조 지표를 개선하는 데 분명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자산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시 의무가 부여된 기업들은 시행 3년 차를 기점으로 지배구조 총점이 이전 대비 약 7점 이상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부문별로는 ‘주주 권리’와 ‘감사제도’ 항목에서 눈에 띄는 개선이 관찰됐다.

하지만 상세 지표를 뜯어보면 실상은 다르다. 기업들이 제도적 비판을 피하기 위해 비교적 개선하기 쉬운 정량적 지표 위주로 대응하는, 이른바 ‘박스 티킹(box-ticking, 본질적 개선보다는 형식적 요건 충족에 그치는 관행)’ 현상이 뚜렷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주주총회 집중일 이외 개최’ 지표의 경우, 준수율 자체는 높아졌으나 실제로는 3월 말에 주총을 여는 기업 비중이 여전히 90%를 상회했다.

분산 개최라는 형식은 갖췄으나 주주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는 무색해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부문의 정체다. 주주 권리나 감사제도 항목이 공시 의무화 이후 점수가 크게 오른 것과 달리,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다양성 등을 평가하는 항목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보고서는 기업가치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이사회 부문의 개선이 지지부진한 것이 공시 의무화 효과를 반감시킨 결정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6년…기업가치 효과는 제자리”


이사회 독립성이 기업가치 가른다

실증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사회 관련 점수가 실제로 상승한 기업군에서는 기업가치도 함께 상승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공시 여부보다 이사회의 질적 변화가 시장의 신뢰를
얻는 핵심 동력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대다수 상장사가 이사회 구조 개편과 같은 민감한 사안보다는 감사위원회 설치나 정관 변경 등 제도적 요건 충족에 그치면서 전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효과는 정체된 상태다.

보고서는 2026년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의무화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제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제언했다. 현재 한국은 원칙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준수 혹은 설명’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이 미준수 사유를 아예 기재하지 않거나 “검토 중”이라는 식의 형식적 문구를 반복하고 있다.

영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미준수 시 구체적인 배경과 향후 개선 계획, 보완책을 상세히 기재하도록 하고 감독당국이 이를 엄격히 점검하고 있다.

임나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단순히 공시 여부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 설명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공시 항목의 세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보고서는 공시의 ‘양적 확대’가 반드시 지배구조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짚어냈다. 2026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기업은 형식적 대응에서 벗어나 이사회 중심의 실질적 경영 혁신에 나서야 하며, 정부는 공시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교한 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지배구조’의 성패는 이제 ‘얼마나 많은 기업이 공시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소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뷰]
“투자자는 ‘로드맵’ 원해… 공시 통합 체계 서둘러야”
임나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6년…기업가치 효과는 제자리”
이 보고서 주제를 선택한 계기나 배경은.

“한국은 기업지배구조 부문에서 여전히 국제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주요 아시아 12개국 평가에서 한국은 지속해서 8~9위에 머물러 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업지배구조 이슈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중에서도 지배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공시 제도에 주목하게 됐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가 지배구조의 형식적 개선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기업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효과를 분석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은 무엇인가.

“2026년부터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 대상이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전체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정책의 효과를 본격적으로 점검한 연구는 현재로선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당초 의도한 목적을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됐다. 더불어 자산 규모에 따라 공시 의무가 단계적으로 적용된 제도적 특성이 경제학 방법론 측면에서 인과효과를 분석하는 데 유의미한 연구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 됐다.”

지배구조 점수는 개선됐지만 기업가치에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는데, 이 결과를 어떻게 보는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고 본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요구하는 항목 가운데 형식적인 요소가 적지 않고, 기업들도 비교적 쉽게 준수할 수 있는 항목을 중심으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배구조 점수 자체는 상승했지만 기업 운영 방식이나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 같은 질적 개선이 뒤따르지 않아 기업가치 제고로 연결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시 제도가 보완된다면 어떤 방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

“우선 핵심지표와 세부 공시항목이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순히 준수 여부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준수 사유에 대해서도 기업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설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사업보고서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간의 통합 공시 체계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기업들은 공시 항목을 형식적으로 충족하는 '박스 티킹(box-ticking)’에 그치기보다, 실질적인 지배구조 체질 개선에 더 힘쓸 필요가 있다. 다만 별도의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배구조 공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 게 바람직한가.

“투자자는 공시 정보가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이 더욱 충실한 정보를 공시할 수 있도록 주주권 행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추가적으로 더 연구하고 싶은 주제나 데이터가 있나.

“최근에는 한국 상장기업 이사들의 경력 특성과 전문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6년 의무 공시 대상이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확대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나.

“더 많은 기업이 형식적으로나마 다양한 지배구조 항목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들까지 포함되는 만큼,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커질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전체적인 핵심지표의 평균 준수율은 오히려 현재보다 다소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

자본시장연구원은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 자본시장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자본시장 발전을 통해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연구기관이다.
이 기관은 1992년 한국증권업협회 산하 연구소로 출발해 현재까지 발전해 왔으며, 자본시장 제도·금융산업·거시경제·연금·디지털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책 연구와 분석을 수행한다. 특히 시장의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핵심 기능으로 하고 있다. 또한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 등 글로벌 기관들과 협력하며 국제적인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