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특별법이 발효되었지만, 속도보다도 방향성과 완성도 점검이 더 중요하다. 각국 정부는 가격 체계를 현실화하고, 투자 유치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해상풍력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공공입찰 준비 기간과 입지 조사 정보도 충분히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
[한경ESG] 러닝 - 해상풍력 성공의 조건②
해상풍력특별법이 지난 3월 26일 발효되고, 세부 시행령 확정과 함께 고시 제정 절차가 진행 중이다.그간 국내 해상풍력 확대의 걸림돌로 지적되어 온 난개발, 복잡한 인허가,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소하고자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와 통합입찰 제도를 도입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사업권과 전력판매계약을 동시에 부여하는 통합입찰 방식은 불확실성을 낮추고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도 크다.
그러나 제도의 방향성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현실에 맞는 제도’,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전문성’, 그리고 ‘철저한 사전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쉽게 좌초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도입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실행 역량이다.
최근 유럽 주요국의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영국·독일·덴마크·네덜란드 등 해상풍력 선진국들조차 전력판매계약 입찰에서 연이어 유찰을 경험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으로 사업비가 급증했음에도 정부가 제시한 상한가격이 이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책 목표와 시장 현실 간의 괴리가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정책과 시장의 괴리 좁히기
각국 정부는 빠르게 방향을 수정하고 있다. 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과 사전 분석을 통해 가격 체계를 현실화하고, 투자 유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영국은 상한가격을 대폭 상향해 입찰을 정상화했고, 일본 역시 경험이 부족한 사업자 간 저가 경쟁을 통해 낙찰된 사업자가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입찰 실패를 겪은 후 보조금 확대와 실행능력 중심의 평가기준 개편 등 제도 보완에 나섰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단순한 정책 수정이 아니라, 정부의 학습과 전문성 강화였다. 시장의 구조와 리스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제도에 반영하는 능력이 없으면 정책은 반복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시 같은 교훈을 직시해야 한다. 발전단가 인하는 중요하지만,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에서 가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사업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현실을 외면한 채 정책을 설계할 경우, 결국 투자 위축과 산업 지연이라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입찰 제도의 세부 설계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와 같이 통합입찰을 운영하는 해외 국가는 사업자가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바탕으로 발전단지 설계, 물량 산출, 공사 일정 수립 및 사업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입찰 마감 최소 7~14개월 전에 상한가, 분담금, 평가 기준 등의 주요 조건과 상세 입지 정보를 공개한다. 반면 국내 공공입찰의 준비 기간은 일반적으로 6주 내외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일정으로는 수조 원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비를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보의 질 또한 중요하다. 입지 조사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사업자는 불확실성을 반영해 보다 보수적인 설계를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전력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실측 풍황조건이나 해저지반 조사와 같은 핵심 데이터는 설계와 공사비 산정의 출발점이 되는 요소로, 정보의 범위와 정확도에 따라 사업성 자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주요 국가들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충분한 수준의 입지 데이터를 확보·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산업계 및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 왔다. 우리나라 역시 계획입지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입지 조사 범위와 수준에 대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설계와 직결되는 핵심 조사 항목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과 산업계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여 사업 초기 단계의 불확실성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사업자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전력 공급 비용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조달 측면에서도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해상풍력 사업은 전체 사업비의 70% 이상을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의존하는 구조이며, 금융기관은 계통 연결의 불확실성을 가장 중요한 리스크 요소 중 하나로 본다. 해상풍력의 계통 문제를 일찍이 경험한 독일과 네덜란드는 송전망 운영자가 계통 연결 시점과 용량을 보장하고, 지연 시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동시에 사업자도 일정 수준의 책임을 지는 상호보증 구조를 통해 리스크를 균형 있게 분담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장기간에 걸쳐 준비한 결과다. 다시 말해, 해상풍력 정책의 성공 여부는 제도의 ‘유무’가 아니라, 이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정부의 전문성과 준비 수준에 달려 있다.
속도보다 방향과 완성도 점검이 중요
최근 관계 부처가 사업자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보급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방향과 완성도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해외 사례를 단순히 참고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성·기술성에 대한 자체적인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입찰 가격, 일정, 평가 기준, 계약 조건, 입지 정보 등 모든 요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현실과 어긋날 경우 전체 제도는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시장 초기 단계에서는 작은 정책 설계 오류가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상풍력은 단순한 발전원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좌우하는 전략 산업이다. 이번 특별법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실성 있는 제도 설계’, ‘정부의 전문성 강화’, 그리고 ‘철저한 사전 준비’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이 세 가지를 얼마나 충실히 갖추는가에 따라 우리나라 해상풍력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