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신탁에 맡기라고?"…집주인들은 '글쎄'
전세사기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임대인(집주인)이 아닌 제3의 기관이 보증금을 관리하는 전세신탁 도입이 추진된다. 정부는 이르면 하반기부터 등록임대사업자를 대상으로 이 제도를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업자 입장에서 참여 유인책이 크지 않아 제도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보증수수료 깍아주고 운용수익도 '기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상반기 내 제도 개선을 마치고 하반기부터 민간임대사업자가 운영하는 임대 주택 등에 전세신탁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세신탁은 세입자가 낸 보증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집주인이 아닌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제3의 기관에 예치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전세보증금을 신탁에 맡기라고?"…집주인들은 '글쎄'
신탁은 소유주 자체가 바뀌는 형식이어서 앞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던 ‘전세 에스크로’보다 강력하다. 에스크로는 임대 보증금을 은행 등 별도 계좌에 넣어놓고 계약이 종료됐을 때 반환해 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신탁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임차인의 전세사기 예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 등으로 전세 피해자에 대한 ‘선구제 후회수’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구조적인 전세사기, 역전세 문제 등을 예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아예 보증금 일부를 미리 떼어 보관해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제시했던 사전 예방책들은 전세 계약 때 필요한 핵심 정보 제공, 악성 임대인 리스트 관리 및 공개, 안심전세앱을 활용한 임대인의 위험도 지표 제공 등에 그쳤다.

임차인(세입자) 입장에서 가장 큰 장점은 전세사기 발생 때 사전 예치된 금액을 즉각 반환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보증 보험은 대위변제 절차를 기다려야 하지만 전세신탁은 즉각 소유권이 이전된다. 보증보험 가입 의무가 있는 민간임대사업자를 우선 대상으로 삼아 선택제로 운영된다. 현재 임대사업자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보증금 전액에 대해 의무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 중에 일부를 HUG 등에 신탁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탁하는 만큼 보증 가입 대상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지급해야 할 전체 보증 수수료가 낮아지게 된다”며 “맡긴 돈은 별도로 운용해 수익까지 되돌려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동난 전세매물...제도 참여 유인도 없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다. 한 임대인은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보증금을 받아 활용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며 “임대사업자의 참여는 고사하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의무가 추가로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임대사업 등록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익률을 훨씬 웃돌아야 보증금을 신탁할 유인이 생기는 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세보증금을 신탁에 맡기라고?"…집주인들은 '글쎄'
전세 물건 자체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04.4로, 전년 동기(97.7)보다 6.7포인트(p) 상승했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범위로, 100을 넘으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도 99.68에서 103.36으로 상승했다.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1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2480건으로 1년 전 3만976건에 비해 27.5% 급감했다.

전세난에 월세로 떠밀리는 사람들로 인해 월세화 속도도 빨라진다.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지난해 11월 130.2에서 12월 131.2로 상승했다. 소형 평형과 역세권 위주로 월세 상승 압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전세 수요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입주 물량까지 줄어들면 전셋값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을 신탁에 맡기라고?"…집주인들은 '글쎄'
한편 정부는 무작위로 적용되는 대출 규제를 손질할 계획이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사진)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전세대출 문제와 관련해 추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무주택자와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