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칼럼] 산재 제로 사회, 데이터와 금융혁신으로 가능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ESG] 칼럼
    [칼럼] 산재 제로 사회, 데이터와 금융혁신으로 가능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제로 사회 실현’을 강력히 천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대통령조차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 사고를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정보 부족 상황이 심각하다. 금융위원회가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에 대한 금융 불이익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 실행 도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또다시 흐지부지될 우려가 크다.

    필자는 2014년부터 10년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해 한국 기업의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점은 데이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14년부터 매년 산재데이터 공개를 청원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2017년에는 공공데이터분쟁조정위원회에서 “노동부는 공공데이터로 공개하라”는 결정을 받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ESG 평가를 위해 뉴스 데이터라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인공지능(AI)을 도입해 기업의 사건·사고를 수집·분석하는 리스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다. 실제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기 8개월 전 리스크를 감지하는 등 하인리히법칙(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이어지는 패턴)을 통한 예측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첫 번째 해결 방안은 산재 데이터의 완전 공개다. 2017년 위원회 결정을 즉시 이행해 기업별 산재 데이터를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 수준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오픈 API를 제공해 금융기관, 투자자, 연구자, 시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보의 투명성이 확보되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관리에 투자하게 된다.

    두 번째 해결 방안은 지속가능성 신용평가 도입이다. 금융거래의 기준이 되도록 법적으로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2014년 도입된 기술신용평가(기술평가+신용평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신용평가+지속가능성 평가’를 결합한 지속가능성 신용평가(SCB)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산재 발생률, 환경 법규 준수, 안전보건 거버넌스 등을 기존 신용평가에 반영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종합 평가하는 것이다. 신용평가가 개선되면 금융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안전관리 우수 기업에는 금리인하 혜택이, 리스크가 높은 기업에는 금리상승 압박이 가해져 경제적 인센티브로 기업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필자는 2019년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받아 국내 최초로 신용평가에 ESG를 결합하는 임시 허가를 받았다. ‘지속가능 대출(Sustainable lending)’이라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했지만, 2022년 정권교체와 함께 금융사와의 혁신도 중단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국제금융공사(IFC),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이미 표준이 된 지속가능 금융의 핵심 도구다.

    이번에 정부가 성공하려면 구체적 도구가 필요하다. 선언적 정책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시스템, 관치금융 논란이 아닌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접근이 답이다. 2017년 조정위원회 결정 이행과 지속가능성 신용평가 도입, 이 2가지만 실현되어도 대한민국은 진정한 산재 제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10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정책결정자의 결단만 남았다.

    윤덕찬 후즈굿 대표

    ADVERTISEMENT

    1. 1

      그래미상 받은 소프라노...서덜랜드가 결혼 전 노래하는 '고맙습니다, 여러분'

      라 스투펜다(La Stupenda). ‘놀라운 여자’, ‘경이로운 여성’이란 이태리 말이다. 별명이 La Divina/라 디비나(거룩한 여인, 신성한 여성)였던 마리아 칼라...

    2. 2

      K-패션의 맑고 푸른 미래....이청청(李淸靑) 디자이너

      유명인 2세들은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자식’이라는 사실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 굴레다. 잘해도 본전, 못하면 부모만 못하다는 얘기 듣기 십상이니까. 이청청은 한국을 대표하는...

    3. 3

      오페라 가르니에, 19세기 위에 그려진 샤갈의 반란

      프랑스 파리의 고전적 건물은 거의 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옷차림을 제한하는 로마 바티칸과는 다르다. 그래서 수백 년 된 건물 안에 편안한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이 무리 지어진 풍경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파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