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란을 둘러싼 전쟁의 포성이 다시금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도를 펴놓고 유가와 물류 대란을 계산하는 냉혹한 수치들 너머로, 문득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그린 소설 하나가 떠오른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다. 이 책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한 개인, 특히 여성의 삶을 어떻게 난도질하는지 참혹하게 증언한다.
전쟁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부순다.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은 오늘날 중동의 긴장감과 겹쳐지며,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국가의 진정한 부(富)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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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격동기인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배경으로, '마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여성의 굴곡진 삶을 따라간다. 마리암은 부유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그의 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하라미(사생아)'라는 낙인이 찍힌 채 카불 외곽의 진흙집 '콜바'에서 세상과 격리되어 자란다. 마리암의 어머니 나나는 세상의 비정함을 일찌감치 딸에게 가르친다.
"이걸 배워라, 딸아. 잘 배워두렴.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듯이, 남자의 손가락은 언제나 여자를 가리킨단다. 언제나 말이다. 명심해라."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현대문학) 출판사 제작 카드뉴스. / 이미지 출처. yes24 캡처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마리암은 단 한 번도 자신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의해 서른 살이나 차이 나는 구두 수선공 '라시드'에게 팔려 가듯 시집을 간다.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마리암에게 카불은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히잡 속에 얼굴을 숨긴 채 매 맞고 살아야 하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계속되는 유산으로 라시드의 폭력은 극에 달하고, 마리암의 자존감은 먼지처럼 부서진다. 세월이 흘러, 이야기는 또 다른 주인공 라일라에게 옮겨간다. 라일라는 마리암과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육받은 지식인이었고,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란다. 네가 교육받지 못하면, 너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야. 전쟁이 끝나면 이 나라는 너 같은 여성들이 필요하게 될 거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출판사 제작 카드뉴스. / 이미지 출처. yes24 캡처
그러나 전쟁은 라일라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다. 로켓탄 한 발에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겨진 라일라는 생존을 위해, 그리고 배 속에 있는 사랑하는 연인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늙은 라시드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이제 한 지붕 아래, 질투와 증오로 시작할 법했던 두 여인의 만남은 아프가니스탄의 잔혹한 현실 속에서 처절한 연대로 승화된다.
처음 마리암에게 라일라는 자신의 평온을 깨뜨린 침입자이자, 남편 라시드의 총애를 뺏어간 약탈자였다. 라시드는 젊고 아름다운 라일라를 위해 마리암을 부엌데기로 전락시켰고, 두 여인 사이에는 차가운 침묵과 날 선 증오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은 집 안에서도 예외 없이 휘몰아쳤다. 라시드의 폭력이 임신 중인 라일라에게까지 향하고, 허기에 지친 아이들이 울부짖는 극한의 상황 속 마리암은 비로소 라일라의 눈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발견한다. 어느 날 밤, 두 여인은 마당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처음으로 마음의 빗장을 연다. 마리암은 평생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다정한 손길을 라일라에게서 느낀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거칠어진 손을 잡으며 말한다.
"언니, 우린 혼자가 아니에요. 이 집에서, 이 도시에서 우리를 지켜줄 사람은 우리뿐이에요."
그날 이후, 두 여인은 가부장적 폭압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는 전우가 된다. 라시드가 라일라를 죽일 듯이 구타할 때 마리암은 자신의 몸을 던져 막아냈고, 마리암이 절망에 빠질 때 라일라는 그녀에게 살아야 할 이유인 '아이들'의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특히 소설의 절정에서 마리암이 보여준 선택은 연대의 정점을 보여준다. 라일라를 목 졸라 죽이려는 라시드를 향해 마리암이 삽을 내리쳤을 때, 그것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다. 평생을 '하라미(사생아)'라 불리며 수동적으로 살아온 여성이, 처음으로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법(남성 중심적 사회)을 거부한 주체적 행동이었다.
마리암은 탈레반의 재판정에서 도망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일라와 아이들을 위해 스스로 남기로 한다. 그녀는 라일라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속삭인다.
"라일라 조(Jo),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마라. 나는 네가 준 사랑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고,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단다. 그것으로 내 삶은 충분히 찬란했어."
마리암은 사형장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녀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라일라는 마리암이 지켜낸 생명을 품고 파키스탄으로 피난했다가, 전쟁이 잦아든 후 다시 카불로 돌아온다. 라일라가 마리암과 살던 그 집의 부서진 담벼락을 어루만지며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파괴된 대지 위에서도 인적 자산의 씨앗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희망을 독자의 가슴에 새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photo by Counse), CC BY 2.0
이 비극적인 서사를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시어도어 슐츠(Theodore Schultz)를 소환하게 된다. 슐츠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연구하며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후진국이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땅이 좁거나 천연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슐츠에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한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하는 '투자'다. 하지만 소설 속 아프가니스탄은 이 인적 자본이 가장 잔인하게 파괴되는 현장이다. 탈레반이 집권하며 내린 포고문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국가의 미래 가치를 '0'으로 수렴하게 만드는 자살 선언과 같았다.
"여성들은 집에 머물러야 한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학교는 폐쇄될 것이며, 여성이 교육받는 것은 죄악이다."
라일라처럼 총명하고 교육받은 여성이 병원에 갈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게 된 현실은 슐츠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스스로 불태우는 행위다. 슐츠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전쟁은 바로 이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미래를 앗아간다.
마리암이 겪은 강제 결혼 역시 '인적 자본의 조기 고갈'을 의미한다. 아이가 교육받고 자신의 잠재력을 탐색해야 할 시간에 노동과 출산의 도구로 전락하는 사회는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늪에서 영영 빠져나올 수 없다. 슐츠는 후진국일수록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빈곤 탈출의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했지만, 총성이 울리는 땅에서 아이들은 연필 대신 총을 들거나, 마리암처럼 이른 나이에 삶의 주권을 잃어버린다.
라시드의 가학적인 폭력이 극에 달하자 마리암은 자신은 비록 어둠 속에서 사라질지언정 다음 세대인 라일라와 그녀의 아이들은 '찬란한 태양' 아래 살게 하겠다는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였다.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그녀는 자신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그녀는 하라미로 태어나 쓸모없는 존재로 시작했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어주고 떠나는 것이었다.“
마리암의 희생 덕분에 라일라는 살아남아 카불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했던 교육의 현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슐츠가 말한 인적 자본의 재건이다. 파괴된 건물은 돈으로 세울 수 있지만, 파괴된 인간의 존엄과 지성은 오직 교육과 사랑을 통해서만 복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 출처. 예스24
오늘날 이란과 중동의 정세를 바라보며 우리는 흔히 지정학적 리스크나 에너지 안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 복잡한 고차방정식 아래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리암처럼 히잡 속에 눈물을 감추고, 라일라처럼 교실 문턱에서 쫓겨나는 수많은 여성의 삶이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는 제3국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먼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지구촌의 절반인 여성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압받는 것은 인류 전체의 거대한 기회비용 손실이다. 슐츠가 강조했듯 인적 자본은 국경을 초월하는 가치다. 한 지역의 지성이 파괴되면 그 여파는 결국 글로벌 경제와 평화의 위기로 되돌아온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중동에 대해 가져야 할 시각은 단순히 '분쟁 지역'을 바라보는 관조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인적 자본 수호'라는 책임감이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시인 사이브 이 타브리지(Saib-e-Tabrizi)는 카불을 찬양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지붕 위에서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네."
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아프간 여인들의 영혼이자,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미래의 가능성이다. 제3국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다. 그것은 슐츠의 방정식이 증명하듯,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수익률 높은 미래 투자다. 전쟁의 포연이 걷힌 뒤에도 우리가 가장 먼저 재건해야 할 것은 무너진 유정(油井)이 아니라, 다시 꿈꿀 수 있는 인간의 마음과 교육의 현장이어야 한다. 마리암의 희생이 라일라의 희망이 되었듯,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중동의 어둠 속에 가려진 천 개의 태양을 다시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