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판을 수상하게 잘 아는 작가
‘하이퍼리얼리즘’ 돌판 묘사 × 매력적인 캐릭터가 성공 비결
케·데·헌의 인기가 좀처럼 식을 줄을 모릅니다. 디즈니의 ‘겨울왕국’ 왕좌 자리를 넘겨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케데헌의 메인 송 ‘골든’도 인기이지만 가상의 남돌(남자 아이돌) 사자보이즈가 부른 ‘소다팝’ 인기도 만만치 않죠.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살짝 연상되는 이지리스닝 스타일이면서 청량해요. 특히 사자보이즈의 중심에 있는 진우라는 캐릭터가 매력있게 그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진우 앓이’ 하는 분들도 꽤 있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 /사진=넷플릭스 제공
고품격 웹소설 리뷰 칼럼 <이우상의 상태창> 그 두 번째 순서로는 웹소설 판에서 대성한 남돌 한 명을 소개해 드릴게요.
술 먹고 자다 깼더니 파릇파릇한 스무 살짜리 남자애 몸에 빙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대가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데못죽)에 걸린 비운의 주인공.
그런데 진우는 춤추고 노래도 하는데 얼굴도 안 보이는 소설 주인공을 어디다 써먹냐고요? 자신은 상상력이 부족해 표지 그림만으로는 부족하다? 걱정 마세요, 동명의 웹툰도 있습니다(끼워팔기)
전체 조회수가 6.6억 회(카카오페이지)에 이를 만큼이나 소설 주인공 박문대 군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문대를 직접 볼 수 있는 소설 속 엑스트라들이 부럽다며, 소설에 빙의시켜달라는 댓글이 매화 한 트럭이라니깐?
그럼 이제 저는 왜 이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인가 끄적여 보겠습니다.
주인공이 같이 오글거림에 현타를 느끼는 소설
케데헌 보면서 그런 느낌 받으신 적 있죠? ‘어 좀 오글거린다’. 흔히 ‘항마력이 달린다’라고 하는데요. 도입부만 넘기면 괜찮은데, 저도 앞부분이 심히 오글거려서 케데헌을 완주하는 데 좀 고생했습니다.
이 오글거림은 아이돌물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은 문턱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돌 팬이 아닌 갓반인이라면 연말 가요대제전만 봐도 형형색색 머리에 서클렌즈, 가죽 하니스를 입고 세상 치명적인 표정을 지으며 헉헉 거리는 모습이 생각보다 높은 ‘입구컷’이 된다니까요? (반박 시 당신 말이 옳습니다, 아무렴요)
그런데 주인공 박문대 아니, 스무 살 청년 박문대의 몸에 빙의한 진짜 주인공 류건우는 29살입니다. 그래서 스무 살짜리 몸에 빙의해 또래 남자애들과 팬과 카메라 앞에서 애교도 부리고, 때론 샤랄라한 무대 컨셉을 소화해야 할 때면 독자보다 먼저 ‘현타’를 느낍니다.
주인공이 한발 앞서 불판 위 오징어가 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오히려 이 소설을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소설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굉장히 영리한 설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류건우가 박문대의 몸에 적응하고 아이돌로서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오글거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되는데. 이 시점은 독자 또한 아이돌물의 장르적 속성에 친숙해진 이후이기도 합니다. 이후엔 여러 위기에 처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죠.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한 백덕수 작가의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표지 / 출처.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캡처불합리함에 빠져드는 독자들
자, 그럼 이제 왜 독자들이 문대를 응원하게 되는지 볼까요?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빙의’, ‘상태창’ ‘회귀’ 소설입니다.
29세 공시생 류건우가 20대 아이돌 지망생 박문대에 빙의하면서 ‘몇 년’ 전의 과거로 오게 되고(회귀). 이 ‘몇 년’의 기억을 무기로 위험을 남들보다 먼저 인지하고, 상태창을 이용해 보컬 실력과 외모, 끼 스탯(능력치) 등을 높여 위기를 넘습니다.
이 소설에는 기본적으로 상태창이 등장한다. 스킬포인트를 찍으면 해당 스킬 레벨을 높일 수 있다. / 출처. 카카오페이지 웹툰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캡처
그리고 그가 맞닥뜨리는 전장은 몇 년 전 유행했던 아이돌 오디션 예능프로그램입니다.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101’, ‘WIN : Who is Next?’ 같은 예능프로 말입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그랬듯 성공한 웹소설은 초반부가 중요하죠. 진득하니 빌드업 같은 거 했다간, 미리 깐 복선을 회수할 즈음엔 남아있는 독자가 없으니까.
이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에게 1년 내 데뷔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제약을 겁니다. 똑딱똑딱. 연습생으로 뽑힌다고 해도 수년은 데뷔를 기다리며 썩어야 할 텐데 1년 만에 데뷔하라니.
그리고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이맘때쯤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 하나가 히트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주인공. 딱 이렇게 끝나는게 1화의 ‘컷팅신공’이니까, 독자 대부분은 홀린 듯이 2화를 보게 됩니다.
주인공은 미래 지식을 총동원해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막차를 탑니다. 목숨이 걸렸는데 별수 있나요? 까라면 까야죠. 그런데 말이죠. 주인공이 섭외된 오디션 예능은 천민자본주의가 넘쳐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내 영혼뿐 아니라 부모·형제의 영혼마저도 헐값에 팔아버릴 것만 같은 곳.
그런데 이거, 이쪽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굉장히 ‘잘 아는 맛’입니다. 제작진이 ‘점찍은’ 지망생의 순위를 높여주기 위해 ‘악편’(악마의 편집)으로 인기 없는 지망생을 골로 보내버린다거나,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며 벼랑 끝으로 지망생들을 몰아붙이는 각종 미션들.
설상가상으로 소설 속 세계관에는 방통위가 없는지. 서바이벌 오디션의 수위가 어째 현실보다 더 높고 살벌합니다. ‘돈미새’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방송국은 각종 끼워팔기로 ‘투표권’을 팬들에게 강매합니다. 또 이렇게 판 투표권을 ‘내 새끼’를 위한 소중한 한 표일 뿐 아니라, 경쟁자 또는 보기 싫은 후보를 쳐내는 용도로도 쓸 수 있게 하는 등 작중 불합리함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고난들은 우리의 현실에도 발을 걸쳐 둔 익숙한 맛인 만큼 독자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주인공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발판이 됩니다.
작가가 누구보다 돌판 고인물
독자들의 눈높이가 상향평준화 되면서 리얼리티에 대한 기준치도 높아졌습니다. 현직 전문의, 변호사들이 직접 뛰어들어 전문성을 녹인 웹소설을 쓰고 있는 시대니까요. 이낙준 이비인후과 전문의(필명 한산이가)가 쓴 메디컬 웹소설 ‘중증외상센터’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가 되기도 했죠?
이 소설 작가 백덕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적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돌판 덕력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돌판 덕력은 현실 고증으로 이어지고, 단순히 고증만 뛰어난 게 아니라 이를 서사의 도구로써도 영리하게 사용합니다.
현실 고증이라면 익명 커뮤니티의 음지 반응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갓반인들은 알 수 없는 지하세계의 반응이죠. 검색 및 고소를 피할 수 있도록 연예인을 본명 대신 기상천외한 별명으로 부르며, 서로 욕하고 헐뜯고. 그런 음습한 모습들이 마치 캡처라도 한 것처럼 리얼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같은 음지 반응을 이용해 전략을 짜는 주인공의 영특함이 빛을 발하면서 소설은 혹여나 중도하차 하려는 독자들의 출구를 막아버리죠.
화자 누군지 안 써놓아도 다 알겠다
제가 꼽는 데못죽의 마지막 매력은 등장인물마다의 고유 캐릭터성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가 말했는지 서술 없이 “~~~” “~~~”만 나열해도, 말씨만 보면 누가 말했는지 다 알 수 있다니까요?
이 때문에 주인공이 훗날 데뷔하게 되는 그룹 ‘테스타’(TeSTAR) 일곱 멤버 한 명 한 명이 실제 아이돌처럼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소설에 몰입할 뿐 아니라 실제 아이돌을 덕질할 때처럼 등장인물을 덕질하는 맛도 살아나게 되죠.
끝으로 이 소설은 웹소설 고인물들을 위한 조미료를 아끼지 않았어요. 웹소설 고인물이란, 흔히 반복되는 클리셰나 전개에 지친 독자들을 말하죠. 이들은 ‘아는 맛’으로는 흥미를 느끼지 않고, 예기치 못한 ‘변화구’나 충격적인 전개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중반부를 넘기면서 주인공이 아닌 적대적인 대상이 회귀하는 독특한 전개를 도입해, 장르 소설로서의 매력을 한껏 끌어냅니다.
아이돌 하기도 바쁜데, 자기 목숨까지 지키느라 바쁜 박문대(류건우)의 이야기. 무대 위 반짝임과 무대 밖 처절함이 한 번에 담긴-. 한번 잡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