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일인데 왜 이렇게 힘들까?

최근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다. 15년 넘게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니는 듯 보였지만 ‘다른 일을 했더라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감 때문에 책상 앞을 밤새 지키거나, 통제할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속을 끓이고, 몇 번씩 뜯어고쳐도 못마땅한 글만 써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기에 공감이 갔다. 이 일이 진짜 내가 원했던 일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고통스럽지? 그런데도 왜 계속하고 있지? 일이라는 것 앞에서 인간은, 마치 신의 노여움을 사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고 또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숙명을 사는 존재들 같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Sisifo, 1548–49. / ⓒ 프라도 미술관
티치아노 베첼리오, Sisifo, 1548–49. / ⓒ 프라도 미술관
일에 대한 의문은 결국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삶에 대한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인 ‘일’에 대해 모두가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루는 사회가 행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가뜩이나 최대치로 몰입해도 벅찬데, 일에 대한 확신을 흔들고 에너지를 갉아먹는 의문들은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할 방해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이자 철학자인 카뮈는 말한다. “왜”라는 그 물음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그 질문에서 출발해 ‘행복한 시지프’에 이르는 길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왜?”에서 시작된다
알베르 카뮈.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알베르 카뮈.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아침에 기상, 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시지프 신화』 (민음사)

도대체 뭐가 시작된다는 걸까? 숨을 참고 잠깐씩 겨우 해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듯, 카뮈의 생각을 어렵사리 더듬어가며 이해한 바로는 이렇다. 질문을 갖기 전의 인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습관대로 산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솟아오른 “왜?”라는 물음은 중요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바로, 세상에는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한들 더 행복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지금 이 고통을 견딘다고 끝에 대단한 보상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카뮈는 이 ‘의미 없음’, 즉 부조리함만이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진리라고 말한다.

어떤 선택에도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두 갈래 길이 남는다. 모든 것을 당장 그만두거나, 아니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주인이 되거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카뮈는 후자를 선택해 ‘부조리한 인간’이 되기를 권하며 그 전형으로 ‘돈 후안’을 제시한다. 그는 『시지프 신화』에서 돈 후안을 언급했을 뿐 아니라,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기고한 칼럼 「모차르트를 위한 감사(Remercîment à Mozart)」에서도 오페라 <돈 조반니>를 “모든 예술의 정점”으로 꼽았다. 그 안에 “전염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독립성”이 담겨 있다면서 말이다.

카뮈가 희대의 난봉꾼 ‘돈 후안’을 사랑한 이유
알렉상드르 프라고나르, Don Juan and the statue of the Commander.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알렉상드르 프라고나르, Don Juan and the statue of the Commander.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돈 후안은 17세기 스페인의 전설 속 인물로, 1630년경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돌 손님』에서 최초로 캐릭터화됐다고 알려진다. 몰리에르나 바이런 등 여러 저명한 작가들이 그를 다뤘지만, 우리에게는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돈 후안을 다룬 가장 친숙한 작품일 것이다. 당시 유럽 오페라 시장은 이탈리아어 대본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돈 후안이 ‘돈 조반니’가 됐다.

그렇지만 돈 후안이 어떤 인물인지 안다면, 그가 철학적 모범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희대의 호색한이자 파렴치한이기 때문이다. 하인 레포렐로의 노랫말을 빌리자면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에서는 231명, 프랑스에서는 100명, 터키에서는 91명, 스페인에서는 자그마치 1,003명”의 여인을 유혹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인물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카탈로그의 노래’

카뮈는 왜 이런 난봉꾼을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본 걸까? 단순히 윤리나 규범을 어기고 멋대로 행동했다고 해서 진정한 반항이라고 추켜세운 건 아니다. 돈 후안에게서 되새겨볼 지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았고, 자기 욕망이 타인의 시선이나 종교적 심판과 부딪힐 때도 감정과 행동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으면서도 돈 후안은 한 번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세비야 온 천지가 나를 사악하다 부르지. 내 안에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다름 아닌 모든 여자를 유혹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내 삶의 의미”
티르소 데 몰리나, 전기순 옮김, 『돈 후안 외』 (을유문화사)

매분, 매초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

‘왜’라는 혼란과 그로 인한 후회는 결국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다른 선택지가 더 나았던 건 아닐까’, ‘계속 견뎌야 할까’라는 고민은 고통스럽지만 나를 더 분명히 들여다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카뮈는 동등하게 시간이 주어진 두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살 수 있다면서, 진정으로 살고자 한다면 “최대한 많이” 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많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매 순간마다 나에게 치열하게 묻고 정직하게 답하는 것이라고. 우리 대부분은 선택을 취업, 결혼 등 중요한 기로에서 한 번씩만 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매 순간 선택한다. 대신 정직하게 어떤 게 좋고 어떤 게 싫은지, 정말 싫기만 한지, 바꿀 수 있는 건 없는지 파고들면서 말이다. <돈 조반니>에서 돈 후안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던 이유도 이처럼 치열한 자기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페라 안에서 이 결말은 주인공에겐 심판이자 비극이지만 우리 삶에서 후회 없는 죽음은 가장 온전하게 자기 삶을 살아낸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는 무척 다면적이고, 고정 불변하지 않다. 어제와 같은 질문에 오늘은 다른 답을 내릴 수 있고, 과거에는 좋았던 대상에 이제는 별 감흥이 안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억지로 버텼다고 여겼던 15년과 매일의 선택으로 쌓아 올린 15년이 겉보기엔 조금도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시간의 밀도와 만족감은 전혀 다를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 질문은 나를 덜 구속하고, 더 자유롭게 한다. 결국 그런 감각들이 굴러 내려가는 바위를 따라 달려 내려가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힘 아닐까.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조반니, 당신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지’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