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가 드높다. OST로 빌보드 차트 정점을 찍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신드롬 덕분인가. 안 그래도 ‘뮷즈 MU:DS’와 수준 높은 기획으로 주목도가 높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가 더욱 뜨겁다. 무더위 속에서도 개장 전부터 중정이 장사진을 이룬다. 한참 줄 서 가방 검사를 통과해 들어가서도 인파로 북적북적하다. 웅성웅성하는 소음이 박물관 기둥과 천장에 부딪히고 공명한다. 이를 두고 적막한 분위기 속에 긴 시간과 삶, 서사가 깃든 유물과 대면하는 소요(逍遙), 침잠(沈潛)의 경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조용한 사색과 여유로운 즐김은 요즘 K-컬쳐로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 :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백자실의 '백자 달항아리' /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백자실의 '백자 달항아리' /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역으로 사람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사유의 방’과 3층 분청사기·백자실에 있는 ‘달항아리’ 공간이다. 두 유물의 전시 공간은 유독 넓다.1) 사유의 방은 수묵화 여백과 같은 텅 빈 공간,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 새벽녘 여명처럼 붉게 물든 어둠과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천정 연출이 높이 81.5㎝과 90.8㎝에 불과한 두 불상을 오롯이 비춘다. 두 불상은 시기도 다르고 표정과 자세도 다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관객에게 두 불상의 연대, 기법 그리고 두 부처의 다른 자세와 수인(手印)의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두운 전실을 통과해 밝게 빛나는 금빛 불상 앞에 서면 부처가 온화한 미소로‘자네, 잘 왔네’라고 반겨주는 것 같다. 바깥세상은 번잡하지만, 이 공간에서만큼은 평온한 마음으로 명상하며 집착했던 부질없는 상념, 번잡함을 떨쳐내고 싶다. 불상이 아닌 오롯이 마주하는 내 자신이 사유의 방의 주인공이다. 이것이 교육, 계몽을 중시했던 과거 박물관 전시와 관객의 직접적인 체험과 개별적 감흥, 소통을 존중하는 지금의 전시가 다른 점이다.
백자 달항아리(白磁大壺), 보물 제1437호, 조선, 높이 41.0cm, 입지름 20.0cm, 바닥지름 16.0cm, 몸통지름 40.0cm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달항아리(白磁大壺), 보물 제1437호, 조선, 높이 41.0cm, 입지름 20.0cm, 바닥지름 16.0cm, 몸통지름 40.0cm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3층 ‘달항아리’ 공간도 마찬가지다. 2021년 새 단장한 분청사기·백자실 중심 공간의 주인공은 오직 단 한 점, 보물 제1437호 ‘백자 달항아리’다. 달항아리의 원이름은 ‘백자대호(白磁大壺)’다. 통상‘大’를 붙이려면 높이가 45㎝는 되어야 한다지만, 현존 유물 중에서 기준을 만족하는 것은 드물다. 보물 제1437호 달항아리의 역시 높이 41㎝에 불과하다.2) 그럼에도 국내외 안팎으로 알려진 달항아리 중에서 꽤 큰 편이며 형태, 색 또한 유려하다. 전시실 달항아리가 놓인 뒤편에는 박물관 소장 회화 4점이 파노라마 영화처럼 상영 중이다. 달항아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아담한 공간, 눈 내리는 겨울 심산이 되었다가 매화가 흩날리다가 달빛 드리워진 수변 풍경으로 바뀌는 배경을 뒤로 희고 둥근 항아리가 좌선한 스님처럼 놓여 있다. 달항아리를 마주하고 바뀌는 수묵을 차경(借景)처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현실과 꿈을 일체화했던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마냥 내가 있는 이 순간이 적요의 순간이요, 이 자리가 영성의 장소다. 이것이 MZ세대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달멍’ 명소로 꼽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은 유독 달항아리를 선호할까? 요즘 박물관 뮷즈를 비롯해 전통문화상품, 디자인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 공예까지 온통 달항아리 일색이다. 대중과 시장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달항아리는 조선백자의 대세가 아니다. 오히려 왕실과 사대부들은 청화백자를 선호했다. 대중은 실내 인테리어로 달항아리 그림이든 실물이든 갖고 싶어 한다. 집에서도 ‘달멍’은 필요하다. 그러나 실내에 달항아리를 두기에는 구형(球形)으로 육중하며 담기에 용량이 크고 아가리가 넓다. 단점에도 달항아리의 인기가 치솟은 데는 “한민족은 한(恨)의 비애미가 있다”고 한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그리고 영국으로 가져가 현재는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달항아리의 주인공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 등의 애호가 깔려 있다. 여기에 백자대호를 ‘달항아리’로 명명한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인기, ‘어수룩하고 구수한 큰 맛’ 혹은 ‘맏며느리처럼 푸근한 도자기’ 등 미술사가 최순우의 문학적 수사 그리고 예부터 해를 중시한 중국, 일본과 달리 ‘달의 서정’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낭만 기호가 더해져 달항아리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백자 달항아리(白磁大壺), 이건희컬렉션, 조선, 높이 34.3cm, 입지름 14.3cm, 바닥지름 12.7cm, 너비 32.8cm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백자 달항아리(白磁大壺), 이건희컬렉션, 조선, 높이 34.3cm, 입지름 14.3cm, 바닥지름 12.7cm, 너비 32.8cm /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를 두고 비판이 적지 않다. 비정형의 달항아리를 두고 일제강점기의 한국의 비애를 떠올렸다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감상이든, 서로 마주 앉아 술 한잔 기울이며 예술과 한국미술의 본색을 논했던 화가 김환기와 최순우의 환담 등등 각자 달항아리를 두고 각자 즐긴 결과, 개인적 선호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사유의 방과 달항아리에서 ‘유물멍’하며 저마다의 감상과 방식으로 평온을 찾고 세상을 살아갈 나의 삶을 다지는 힘을 얻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중 과하게 달항아리 열풍이 과하게 달아오르고 상업적으로 소비되고, 작가들은 무분별하게 모방으로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달항아리의 담백함을 현대미술의 미니멀리즘으로 오해하거나 달멍의 대상으로만 소모하는 일도 우려스럽다. 달항아리가 ‘달’은 아니다. 달항아리에서 볼 것이 그저 피안(彼岸)이고 멍한 휴식뿐이겠는가? 국중박 전시실에 나온 달항아리 말고도 찾아보면 국내외 알려진 달항아리가 여럿 있다. 각자 다른 매력과 특징이 있다. 국중박 소장 달항아리만 해도 총 3점이다. 어떤 것은 보고 있으면 정지되어 있음에도 상하 다른 결과 속도감으로 음과 양이 강하게 휘도는 태극(太極)이 움찔움찔 눈 앞에 펼쳐진다. 어떤 것은 어깨에서 하부로 내려오는 좌우선이 비대칭으로 다르고 서 있는 것도 비스듬한데 어떻게 조화롭고 편안할까 싶다. 어느 집 금사리 굵은 모래 알갱이 사이로 스며든 일상 사용의 얼룩 덕분에 정말 구름 사이로 얼굴을 반쯤 내민 보름달을 보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얼룩(오동나무 기름으로 추정)으로 유명한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높이 44.5㎝ /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자연스러운 얼룩(오동나무 기름으로 추정)으로 유명한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 높이 44.5㎝ /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달항아리를 지상에 내려온 달로 여기는 휴(休)의 감상이나 타인이 정의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수용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달항아리를 좋아하는 남다른 이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달항아리에서 다른 유물로 관심을 확장한다면, 케데헌 속 까치 호랑이처럼 애착하는 나만의 유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는 원래 주입식보다 자발적일 때 즐거움이 배는 커지고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고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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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항아리가 자리한 공간의 면적 13.5㎡이다. 사유의 방의 공간은 약 439㎡이다.
2) 미술시장에서 초고가에 거래되는 높이 40㎝ 이상의 조선 후기 달항아리 다수는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다. 국외 경매에서 달항아리가 나오더라도 초고가를 기록한다. 우리 미술인 달항아리가 시장에 나와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