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와 경제
금리 인상을 시사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 연합뉴스
금리 인상을 시사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 연합뉴스
마침내 3월, 미국중앙은행(Fed)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시장의 관심은 앞으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리느냐와 함께 지난해 12월 Fed
의사록에서 검토된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이 언제 시행될 것인가, 그리고 QT가 추진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 것인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Fed가 금리를 올린 것은 3년 만의 일이다.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으로 ‘돈의 향연’에 익숙해진 경제주체에게는 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3월 회의 점도표대로 Fed가 추진한다면 올해는 7차례, 내년에는 4차례 더 올려 내년 말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최대 3%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임박한 양적긴축…‘빚의 복수’가 시작된다
더 무서운 것은 코로나19 사태처럼 비상국면에 추진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회수하는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인상→QT)의 마지막 단계에 추진되는 QT다.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은 2013년부터 테이퍼링을 추진해 2014년 10월에 종료하고 1년 2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에 첫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그리고 약 2년이 지난 2017년에야 QT가 추진됐다.

이번에 출구전략 추진은 지난해 9월 Fed 회의 직전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테이퍼링 추진을 놓고 Fed 내에서도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11월 회의에서는 금리인상 문제가 언급됐고, 그 후 한 달도 안 돼 열린 12월 회의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QT가 검토됐다.

코로나19 이후 인플레로 출구전략 급물살

금융위기와 달리 출구전략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거론되는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추진된 무제한 통화공급 정책의 숙취(hangover) 현상인 인플레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이사벨라 웨버 교수는 코로나발 인플레는 50년 전 사라진 ‘가격상한제’를 다시 도입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QT 추진 시기는 갈수록 앞당겨지는 추세다. 매월 테이퍼링 규모가 300억 달러였던 지난해 12월 Fed 회의 직전까지만 해도 올해 안에 QT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3월 회의에서 금리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빠르면 5월 Fed 회의 때부터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QT 추진 시기가 결정되면 그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QT 규모는 Fed의 보유 자산 적정 규모에 달려 있다. 2017년 QT 추진 사례를 보면 금융위기 이후 Fed의 보유 자산이 1조 달러에서 4조5000억 달러로 늘었다. 보유 자산 적정 규모를 놓고 투자은행(IB)과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의 주장대로 3조8000억 달러로 축소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Fed의 보유 자산은 4조 달러에서 9조 달러로 급증했다. Fed가 보유 자산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가져간다면 5조 달러를 줄여야 한다. 시중 유동성 환수 효과가 금리인상보다 2배 이상 많은 점을 감안하면 벌써부터 월가에서는 ‘5조 달러 QT 재앙에 증시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QT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만만치 않다. 팬데믹 이후 미국 경기는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로 지탱하고 있어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심받아왔다. 올해 출구전략 추진의 세 단계가 한꺼번에 추진될 경우 주가 하락 등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하버드대 래리 서머스 교수는 ‘구조적 장기침체론’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전략을 통해 거품 제거, 지속적 성장 기반 확보 같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금융시장과 경기를 망친 1930년대 Fed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 2006년 전후 일본은행(BOJ)의 ’후쿠이 불명예(Fukui’ disgrace)가 대표적 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세계중앙은행 격인 Fed가 금리를 올리고 앞으로 QT를 추진할 경우 ‘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는 <머니볼> 저자 마이클 루이스가 경고한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어떤 나라보다 가계부채가 많은 우리에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고다.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돈이 풀리고, 이를 마구 사용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경제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왔다. 그 기간도 10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겹쳤다.

세계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20경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4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하면 3000만원이 넘는 수준이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돈값인 금리가 낮고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
다면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부채 경감 신드롬’을 통한 경기부양책인 금융완화가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취약국을 중심으로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는 것이 세계경제의 현실이다.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 수준을 넘어선 빚을 더 늘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 부담(최소한 국민의 이자만이라도)을 줄여야 한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 막 돋기 시작한 ‘경기회복의 새싹(green shoot)’이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빚 부담을 줄이더라도 ‘연착륙’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3년 테이퍼링 추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올해 3월 금리를 올릴 때 ‘역행적 선택론’ 즉 시장에서 금리를 0.5%p 올리고 양적긴축(QT)까지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달리 금리를 0.25p 올리는 데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QT는 5월 회의 때로 넘겨졌다.

바이드노믹스의 총체적 기조는 ‘미국의 재건’이다. 대외적으로 다자주의 복원과 함께 내부적으로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뉴딜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재정 수입 면에서는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1980년대 초 ‘레이건노믹스’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재건’ 노리는 바이드노믹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금리가 오르면 다른 국가는 자국의 경기 여건과 관계없이 금리를 올려야 금융시장과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 관계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국채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함에 따라 채권 가격은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도 없이 ‘순간 폭락(Flash Crash, FC)’ 현상을 보였고, 올해에도 반복됐다. 앞으로 국채금리가 더 상승하면 ‘국채시장->주거용 부동산 시장->신흥국 증시’ 순으로 FC의 전염 효과가 우려된다.

IMF를 비롯한 예측 기관이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준금리 등 정책수단이 제자리로 복귀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빚 상환 능력과 가처분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 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박한 양적긴축…‘빚의 복수’가 시작된다
한국은 민간 채무가 많은 나라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민간 채무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민간 채무 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선에서 벗어난 정도)이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마이너스 수준에서 지난해 말에는 18.2%로 경고(2%p 미만 ’보통‘, 2∼10%p ’주의‘, 10%p 이상 ’경고‘) 단계로 급격히 악화됐다.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Fed의 금리상승에 따른 빚 부담을 연착륙시키지 못하면 1%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ESG에 보다 더 중점을 둬 현금흐름을 좋게 가져가는 ’부(負)의 경영(negative management)‘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 때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