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KIC·국내는 新국부펀드 '투트랙'…"또 하나의 연못 속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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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테마섹같은 '한국형 국부펀드' 추진
자산 1900배 늘린 테마섹처럼
적극적인 M&A와 부동산 투자
"국부 증식시켜 미래세대로 이전"
재원으로 비상장 물납 주식 거론
투자처 못찾은 정책펀드 수두룩
중복 투자로 인한 비효율 우려
정책금융 '해외 수주' 역할 한계
전략수출금융기금으로 지원할 듯
◇6.8조 물납주식이 재원
구 부총리는 “한국투자공사(KIC)는 외환보유액을 운용하기 때문에 테마섹처럼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는 어렵다”며 “테마섹처럼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M&A)과 부동산 투자를 통해 증식한 부를 미래 세대로 이전하고, 국가전략 분야에 장기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마섹은 싱가포르텔레콤, 싱가포르항공, 싱가포르항만공사(PSA) 등 공기업 29곳을 거느린 싱가포르의 정부투자지주회사다. 1974년 출범 당시 3억4500만싱가포르달러에 불과하던 테마섹의 자산은 2023년 말 기준 6540억싱가포르달러(약 674조원)로 50년 동안 1900배 증가했다. 비자, 마스터카드, 블랙록, 텐센트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 투자해 이룬 성과다. 한국 기업 중에선 셀트리온에 투자했다.
한국형 국부펀드의 재원으로는 상속세 물납 제도를 통해 정부가 가진 비상장 주식이 우선 거론된다. 올해 8월 기준 정부는 350개 종목, 6조8000억원어치 물납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주식을 단순히 매각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고 필요하면 더 사서 경영권을 붙여 매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150조원 규모로 이날 출범한 국민성장펀드 등 다양한 정책 펀드가 운용되는 상황에서 한국형 국부펀드가 투자 중복과 비효율을 낳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소기업모태조합출자(중소벤처기업부), 미래환경산업투자펀드(기후에너지환경부), 뉴스페이스투자지원(우주항공청) 등은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출자액이 2조원이나 남아 있지만, 정부는 내년에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추가 배정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한국형 투자펀드가 국내 주식·채권과 대체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 국민연금과 함께 민간 시장을 구축하는 ‘두 마리의 연못 속 고래’가 될 가능성도 있다.
◇‘K엔비디아’ 현실화
해외에서 대규모 수주 사업을 지원하는 전략수출금융기금도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영 활동을 지원하면서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해외 수주를 지원하는 정책금융기관으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있다. 하지만 기존 정책금융기관들은 ‘조건부 금융’을 제공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해외 수주전에서 경쟁 상대를 압도하는 적극적인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이 대통령은 “국가재정과 역량을 투입해 대규모 전략 사업을 수주해도 혜택은 소수 기업이 본다”며 “전략수출금융기금이 함께 지원하되 수익의 일부를 환수하면 국민 생활과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국부펀드와 전략수출금융기금 모두 이 대통령의 ‘K엔비디아’ 구상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이전부터 “엔비디아 같은 거대 첨단 미래 기업을 하나 만들어서 (지분을)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재부의 국부펀드 구상도 대통령실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는 “정부가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 펀드가 아니라 직접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 경우 기존 펀드, 연기금과 이해 상충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영효/남정민/이광식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