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료·출연료까지 다 털었다…하정우 '윗집 사람들' 제작기 [인터뷰+]

하정우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
"위기 속 한국 영화, 숨 쉬고 있다는 것 알려"
"섹스 코미디 아냐…관계 회복에 집중"
'윗집 사람들' 하정우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포
올해만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주연작 '브로큰'을 시작으로 출연과 연출을 겸한 '로비'에 이어 3일 개봉하는 '윗집 사람들'까지. 하정우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몰릴 줄은 몰랐다"며 "개봉을 한 게 아니라 개봉 당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와 감독을 동시에 오가는 바쁜 해, 하정우는 신작 '윗집 사람들'을 통해 또 한 번 관객을 찾았다.

올해만 두 편의 연출작을 내놓은 데 대해 그는 "이런 경우는 없었다. 투자 배급사의 결정이고, 각 회사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8개월 간격으로 두 작품을 내놓는 것 자체가 창작자로서는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관객들에게 피로도를 줄 수 있고, 다음 작품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 시장이 위기를 맞은 가운데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연출작을 개봉하는 것에 대해 "좋은 타이밍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런 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살아 숨 쉬고 있다 하는 맥락에서 좋은 영향을 주는 것 아닐까 생각도 든다"고 강조했다.

최근 진행된 가족 시사회를 떠올리며 "감독님들, 제작사 관계자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셨는데 모두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큰 자극이 된다고 하시더라.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화 '윗집 사람들'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 '윗집 사람들'은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을 각색한 작품으로, 아랫집 부부가 윗집 부부를 초대하며 벌어지는 감정 충돌을 그린다. 하루 동안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구조로 대사량이 많고 리듬이 중요한 작품이다.

하정우는 "원작을 본 뒤 영화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 시나리오만 보면 어색한 부분이 많았지만, 영화를 보면 정서가 확실하게 느껴졌다"며 "원작은 순한, 담백한 맛이라면 '윗집 사람들'은 더 갔다"고 했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불같던 결혼 생활은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일상만 남은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 요즘 두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건, 매일 밤 지나치게 활기찬 소리를 내는 윗집 부부 김선생(하정우)과 수경(이하늬)이다. 정아는 이사 공사 소음을 참아준 윗집 부부를 위해 예의상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그날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윗집 부부는 정아와 현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을 한다. 이 구절과 홍보 포인트만 보면 말맛을 살린 '섹스 코미디'라고 보일 수 있다. 하정우는 온라인에서 확산된 '스와핑 영화'라는 표현에 대해 그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연출자로서 그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비즈니스적으로 고려하고 타협한 부분이 있겠지만 순수하게 연출자 입장에선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순진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반응들은 영화가 개봉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노출 하나 없지만, 부부간 혹은 스와핑과 같은 성생활에 대한 대화가 나오기 때문이다. "매번 영화 찍으면서 '더 갔어야 하는 거 아냐'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끝까지 한번 가 보자 싶었어요. 대사가 안 들린다는 반응이 있어서 그럼 자막을 깔아보자 했죠. 자막이 선행되어서 코미디를 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최대한 늦게 나오게끔 조절을 했습니다."

하정우는 "저는 '윗집 사람들'을 말장난, 티키타카, 섹스 코미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관계 회복과 드라마가 굉장히 좋았다. 원작의 울림이나 크기, 부부 관계의 깨달음과 회복이 중심인데 그것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가 숙제였고 도전 과제였다"고 강조했다.
영화 '윗집 사람들'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윗집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네 캐릭터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윗집의 '섹(SEX)다른' 소음으로 고통받는 아랫집 부부. 하지만 단순한 불편함에서 출발한 이 만남은 단 한 끼의 저녁 식사를 통해 네 사람의 감춰졌던 욕망, 비밀, 진심을 들추어낸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공효진, 김동욱, 이하늬와 하정우는 밀도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극 안으로 불러들인다.

하정우는 "'롤러코스터', '허삼관', '로비'는 진짜 많은 분이 나온다.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크고,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찍고 나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공효진과 김동욱은 극 중 아랫집 부부인 정아와 현수로 분해 현실적인 갈등과 감정을 날것 그대로 구현해 냈고, 하정우와 이하늬는 윗집 부부로 등장해 이 모든 감정의 중심에 기묘하게 침투한다.

제작비 30억 규모의 영화라 네 명의 배우들은 개런티를 깎고 출연을 결정했다. 하정우는 "저도 연출료, 시나리오, 각본료, 출연료 등 엄청나게 많은 걸 투입했다"며 "그렇게 해야 찍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귀띔했다.

5주도 채 안 되는 시간에 23회차를 촬영했다고. 하정우는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마지막에 '라비앙로즈' 곡을 쓰기 위해 전체 회차에서 3회차를 줄였어요. 회차를 오버하면 절대 그 곡을 못 쓰거든요. 우리 배우들 개런티와 맞먹는 곡이었습니다."
영화 '윗집 사람들'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공효진 캐스팅에 대해 그는 "설득한다고 설득당할 친구도 아니다. 공효진이 캐릭터에 공감하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직감한 것 같다. 첫 시나리오는 번역본 수준이어서 원작을 봐달라고 했다. 촬영 전까지 최대한 시나리오 고쳐서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믿어달라고 했다. 이거 하면 너는 여우주연상 받는다고 하면서 꼬셨다"고 말했다.

이하늬는 "2주만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하정우 감독이 대차게 깠다"고 앞선 인터뷰에서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에 대해서 하정우는 "처음에 이하늬가 불분명하게 이야기를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시기 였어서 여러 배우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히 2주 만에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하늬 캐스팅의 중심엔 공효진이 있었다. 하정우는 "제 마음속 1번은 이하늬였는데 공효진이 중간중간 컨디션 체크도 해주고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도 해줬다. 중간에서 잘 해줘서 결국 황금 비율이 됐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윗집 사람들'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이하늬가 촬영 중 임신 상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는 "놀랐다"고 말했다. "사람을 상황이 끝으로 몰아세우는 구나 싶었어요. 보호해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세트장 주변에서도 담배를 피지 말라고 했죠. 환기를 한 시간에 10분씩 했어요.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까 봐 전전긍긍했죠. 생명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출산 소식 듣고 천만다행이다 싶었어요. 저희 영화 끝나고 또 드라마 찍더라고요. '와 보통 아니다' 했죠."

하정우가 연기한 김선생은 고등학교 한문 교사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판타지적인 인물. "그런 사람들이 도리어 멀쩡해 보이잖아요. 영화 캐릭터니 겉과 속을 경험할 수 있는 거죠. 어떻게 하면 더 이상해 보일지에 대해 생각했고, 다른 캐릭터들과 앙상블을 잘 이뤄내기 위해 고민했죠. 콧수염 설정은 촬영 며칠 전에 생각이 났어요. 기르면 조금 더 더럽고 재수 없겠다 싶었죠."
'윗집 사람들' 하정우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포
하정우의 영화 현장은 리딩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메인 배우 스케줄 맞추기가 어려워 음색이 비슷한 배우 네 명을 뽑아 아침 8시에 리딩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3개월간 반복했어요. 글을 말로 했을 때 느낌이 다르거든요. 매일 체크하고 수정했죠. 코미디언 엄지윤, 곽범, 이창호를 초빙해서 같이 읽어보기도 했어요. 이런 것에 특화된 전문가들이라 재밌는 점 발견하면 수정하고 했습니다."

영화 속 그림부터 와인, 캐릭터 설정에서 등 그의 DNA가 묻어난다는 반응에 "의도한 바는 아니다"고 말했다. "메인 그림 하나 그렸어요. 제 그림을 건 것은 뭐 뽐내려는 게 아니라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였죠. 삽화는 미술팀에서 그렸고요. 렌탈료나 로얄티를 내야 해서 메인 작품은 제가 생각한 작가들의 모델링을 한 그림이에요. 철저하게 그 영화만을 위해서 제작했어요. 전시한 작품도 아닙니다."

하정우는 자신의 연출작 흥행 성적이 아쉬운 데 대해서는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쉽게 될 일은 아니라는 건 알았다. 관객의 공감을 얻고 소통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그만둘 수 없는 거고 가봐야 하는 거 아니겠나"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제가 천번 무대인사를 하든, 만번 인터뷰를 하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고, 최선을 다해 홍보하는 것뿐이죠. '아직 아니다'라고 하면 아닌 거고요. 분명히 때는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에 대한 결과는 받아들여야죠."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