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지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99세로 4일 별세한 스웨덴의 지휘자 크리스토프 블룸슈테트 / www.ks-gasteig.de ©PAUL YATES
100세 지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99세로 4일 별세한 스웨덴의 지휘자 크리스토프 블룸슈테트 / www.ks-gasteig.de ©PAUL YATES
98세까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온 스웨덴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룸슈테트가 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9세.

고인의 음악을 향한 탐구와 열정은 노년에도 계속됐다. 98세였던 올해 5월 15일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지휘해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주했다. 이 무대가 블룸슈테트의 마지막 공연이다. 1954년 시작한 지휘 인생은 72년으로 막을 내렸다.

소속사 KSG는 블룸슈테트가 스웨덴 예테보리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고인은 100세가 넘어서도 지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최근 수개월 동안 건강 문제로 예정된 공연들을 취소해왔다. 1927년 7월 1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스웨덴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블롬슈테트는 어린 시절 북유럽으로 건너가 성장했다. 스톡홀름과 웁살라에서 바이올린과 음악학을 공부한 뒤 미국과 유럽에서 지휘를 배웠다. 이고리 마르케비치와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그의 음악적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1954년 스톡홀름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전문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2026년까지 무대를 지켰다.

북유럽 악단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1975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지휘자로 취임해 1985년까지 악단을 이끌었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음악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1995년까지 재임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해외 순회공연과 음반 작업을 확대하며 악단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 사진 출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홈페이지.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 사진 출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홈페이지.
1998년에는 쿠르트 마주어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제19대 카펠마이스터에 올랐다. 2005년 퇴임한 뒤에도 명예지휘자로 악단과 인연을 이어갔다. 오랜 전통을 지닌 악단의 소리를 다듬으면서 북유럽 작품 등으로 레퍼토리를 넓힌 것이 그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블롬슈테트의 음악 세계를 지탱한 중심축은 베토벤과 브람스, 브루크너로 이어지는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악 전통이었다. 악보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하는 해석으로 신뢰를 얻었다. 북유럽 작곡가인 닐센과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남긴 두 작곡가의 교향곡 전집은 그의 대표적인 음반 유산이다.

음반으로도 성취를 인정받았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와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으로 각각 1993년과 1996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올해에는 일본미술협회가 수여하는 프리미엄 임페리얼 음악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단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존경을 받았다. 정밀한 음악적 요구와 연주자에 대한 존중을 함께 지켰으며,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오랜 협업 관계를 이어갔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추모문에서 그의 음악관을 보여주는 생전 발언을 소개했다. "음악이 말해야 한다. 음악이 가능한 한 많이 말하고, 나는 가능한 한 적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2024년 의자에 앉은 상태로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블룸슈테트. / ⓒ마르코 보렐리
2024년 의자에 앉은 상태로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블룸슈테트. / ⓒ마르코 보렐리
한국 관객과는 89세이던 2016년 처음 만났다. 그해 10월 26~27일 밤베르크 교향악단을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섰다. 첫날에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이튿날에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지휘했다. 평생 천착해온 레퍼토리로 들려준 연주는 국내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딸 네 명이 있다. 1955년 결혼한 아내 발트라우트 페테르센은 200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악단들도 추모에 나섰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이달 5·6·8일 공연을 고인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도 내년 1월 14~16일 공연을 통해 그의 삶과 음악적 유산을 기릴 예정이다.

블롬슈테트와 함께 현재까지 활동중인 원로 지휘자로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심포니의 예술감독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와 영화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 존 윌리엄스가 있다. 두 사람은 모두 1932년생으로 올해 94세다. 1940년대생 거장으로는 크리스토프 에센바흐(86), 존 엘리엇 가디너(83), 필리프 헤레베헤(79) 등이 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