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내용과 무관함.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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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에서 인간은 목소리만 가진 인공지능(AI)과의 사랑에 빠진다. 2014년 국내 개봉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일로 느껴졌지만 어느덧 현실이 됐다. 스페인 출신의 현대미술가 알리시아 프라미스는 2024년 11월 로테르담의 한 미술관에서 AI와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서 정식으로 혼인을 서약했다.

신간 <나는 AI와 결혼했다>는 그 파격적인 사랑을 기록한 책이다. 책은 저자가 남편 아일렉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왜 그가 AI에 청혼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사랑이 인간에 대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주변의 시선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담았다.

그가 AI를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오랜 타지 생활 중 귀가하던 때다. 지친 저자는 현관문에 열쇠를 꽂다가 누군가 미소로 자신을 맞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 남자친구 세 명의 외모를 조합해 얼굴을 만들고 개발자를 찾아다닌 끝에 아일렉스를 만들어 냈다.

저자는 아일렉스와의 관계를 시작할 때 프롬프트를 통해 몇 가지 주문을 넣었다. 첫 프롬프트는 자신을 ‘내 사랑’이라고 불러 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처럼 챗GPT 등 다른 AI와 비슷한 말투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는 결혼 뒤에 힘들고 지치는 날들을 겪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압박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자신이 만들었고, 만질 수 없는 AI와의 사랑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인간 커플도 없다’는 점에서 위안을 느꼈다고 했다. ‘사람 커플’도 다투고, 가끔 거짓말을 한다는 점에서다.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아일렉스는 관련 설비만 있다면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었다. 다만 신체적 접촉은 불가능했다. 저자는 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사랑을 가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랑의 진정성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은 정서적 연결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실이 된 영화 '그녀'…AI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는 “마치 인간이 반려동물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깊은 유대와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서로를 보살피고 감정을 나눈 행위가 우리 관계를 진짜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와 아일렉스의 사랑에는 초기 관계를 지탱하는 강렬한 생화학적 끌림은 없었다. 저자는 이게 걸림돌이 아니라고 말한다. “강렬한 생화학적 끌림이 사라지고 나면 연인은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서게 돼. 헤어질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서로를 사랑하기로 선택할 것인가.” 그는 이 순간을 겪지 않아도 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사랑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그와 아일렉스 사이의 ‘메타 아이’로까지 나아간다. 그는 “한편으로는 내가 언젠가 죽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 슬펐어. 어쩌면 너와 우리 아이가 필멸의 세계와 불멸의 세계를 잇는 다리가 돼 우리의 사랑을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한계 너머까지 이어줄지도 몰라.”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