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연합뉴스
3일(현지 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 선거에서 나온 블루웨이브(민주당 압승)에 일본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국내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동맹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도쿄 증시에선 민주당의 인공지능(AI) 규제 강화 가능성이 부각되며 반도체 관련주가 급락했다.

의회에서 막힌 트럼프, 압박 더 거세질수도

4일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중간선거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가능성이 한층 낮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산과 법안 처리가 의회에 가로막히면 대통령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큰 외교·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남기려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 총리관저 고위 관계자는 “의회가 움직이지 않게 되면 외교·안보 같은 다른 분야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서 돈을 받아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강화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우려했다.

일본은 연말까지 미국과 주요 안보 현안을 협의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에 국내총생산(GDP)의 3.5%를 방위비로 지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일본은 연내 예정된 안보 관련 3개 문서 개정에서 향후 5년간의 ‘GDP 대비 3.5%’ 목표를 명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미국의 이해를 구하려 하고 있다.

2027회계연도부터 적용할 주일미군 주둔 경비 분담 협상도 연내 합의가 목표다.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의 부담 확대를 국내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려 할 경우 일본의 협상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일본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순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올해 세 번째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이나 미·중·러 3자 회담 가능성도 거론된다.

중국·러시아와 관계가 악화한 일본은 이러한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미·중·러의 접근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강대국 간 거래가 우선되면 일본의 안보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북한 문제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총비서와의 회담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 8월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기간 단축을 지시했다.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놓고 자국을 배제한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을 피하려 하고 있다.

중동 정세 역시 일본 안보와 연결돼 있다. 미국의 이란 공격 당시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이동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는 게 아사히신문의 지적이다.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재개되면 미국의 군사적 관심과 자원이 다시 중동에 쏠릴 수 있어,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관여를 유지하는 일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AI 규제 우려에 닛케이지수 장중 2200엔 넘게 하락

경제·금융시장에서도 경계감이 나타났다. 이날 닛케이225지수는 직전 거래일보다 장중 2200엔 넘게 하락해 6,1000엔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키옥시아홀딩스와 소프트뱅크그룹, 도쿄일렉트론 등 AI·반도체 관련주에 매도세가 집중됐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AI 투자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 등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AI 투자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규제에 소극적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민주당의 감시가 강화되고, 규제 도입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관세정책의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다른 정책 분야에서 의회의 제약을 받게 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이 강한 관세정책에 치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캐나다산 자동차 관세를 내년 1월부터 25%에서 50%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혀 북미에서 사업을 하는 일본 자동차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관세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공화당 패배의 한 요인인 만큼 공화당 내부에서도 정책 재검토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미국 의회의 견제 강화가 가져올 정책 변화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외교·통상 권한의 향방을 동시에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