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습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무대에서 활약해 온 조은채(31)가 12년간의 치열한 골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제2의 인생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조은채는 지난 1일 제주 엘리시안 제주CC(파72)에서 끝난 S-OIL 챔피언십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라운드에서 커트 탈락한 뒤 현장에서는 가족과 지인들이 준비한 은퇴식도 열렸다. 현장에서 만난 그는 “더 잘할 수 있는 곳, 나를 더 돋보이게 하는 곳에 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서른이 넘도록 프로선수로 살며 최선을 다했으니 미련도 없다”고 미소 지었다.

조은채가 처음 골프채를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광주교육대학교 사회체육과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방학마다 골프 모임에 나서며 자연스럽게 골프채를 잡았다. 탁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의 남다른 운동 신경까지 물려받은 그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유자격 선수만 출전하는 대한골프협회 주관 대회에 참가했고, 광주광역시 대표로도 꾸준히 활약했다.

탄탄한 기본기를 앞세워 KLPGA에 입회한 조은채는 1001번째 회원으로 등록돼 '01001'이라는 특별한 번호를 받았다. 2014년 7월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정규 투어에 당당히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1부 투어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데뷔전이었던 롯데마트 여자오픈의 기억이 대표적이다. 첫날 공동 3위에 오르며 깜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본선 라운드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조은채는 “누군가의 주목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성격인데, 팬이 많은 대선배와 같은 조로 묶이면서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며 “결국 내 스스로 그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덤덤하게 돌아봤다.

이후 2부 투어로 내려간 조은채는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올 시즌 정규 투어로 복귀할 때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을 2부에서 보냈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그는 골프를 너무 사랑해서 그만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골프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기에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골프로 승부를 보고 싶었습니다. 20대 후반 무렵부터 은퇴를 고민하면서도, 마침표만큼은 반드시 정규 투어 무대에서 찍겠다고 굳게 다짐했죠. 오랜 시간 묵묵히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분들 앞에서 가장 당당하고 떳떳하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거든요.”
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손가락으로 브이(V)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12년간 출전한 161개 대회 중 정규 투어 출전은 통산 56번. 그중 절반가량을 올 시즌에 쏟아부으며 하얗게 불태웠다. 하지만 마지막 시즌을 돌아보면 진한 아쉬움도 남는다. 지난해 샷 감각이 절정에 달했지만, 나이에 따른 조급함이 발목을 잡았다. 우승을 목표로 시도한 스윙 변화와 낯선 전지훈련장 선택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여기에 메디컬 신청을 고민할 정도의 부상과 스폰서 문제까지 겹치며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조은채는 “실력이 부족한데 정규 투어에서 뛰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며 “자꾸 작아지는 저를 보면서 이제는 승패를 떠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정규 투어 우승 트로피는 끝내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미련은 없다. “100명 중 10명도 우승하기 힘든 종목이 골프”라고 짚은 그는 “우승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꾸준히 치는 선수가 되고 싶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늘 웃고 다니지만 필드 위에서는 한없이 진지했던 조은채. 이제는 무거운 생존 경쟁을 내려놓고 비로소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지난 1일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낸 그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시드전 압박 없이 편안하게 생일을 맞았다”며 홀가분하게 웃었다. 제2의 인생을 향한 발걸음도 가볍다. 앞으로는 소속사 더골프컴퍼니를 통해 기업 행사에 활발히 참여할 계획이다. 조은채는 “우선 1년 정도는 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찾으며 여유를 가질 생각”이라며 차분하게 인생 2막을 그렸다.

대회장을 떠나기 전 KLPGA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고개 숙여 인사한 조은채는 끝으로 주변에 고마움을 전했다. “혼자서는 절대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가족과 스폰서, 팬분들이 준 응원과 에너지 덕분이죠. 앞으로는 그동안 받은 사랑을 주변에 나누며 살아가겠습니다. 은퇴의 순간을 함께해 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캐디로 나선 윤현준 골프전문사진기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조은채가 지난달 29일 제주 엘레시안 제주CC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캐디로 나선 윤현준 골프전문사진기자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태성 골프전문사진기자 제공
제주=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