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알게 된 기술자들을 모아 장기간 비어 있던 아파트를 마약 제조시설로 활용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한약사 등으로부터 대량의 감기약을 공급받아 시가 42억원 상당의 필로폰 1.36㎏을 제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3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경찰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제조 총책 A씨(60대) 등 13명을 검거해 이 중 4명을 구속했다. 검거된 13명은 모두 공소청에 송치됐다.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1.36㎏은 약 4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국내에서 감기약을 이용해 제조한 필로폰 압수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총책 A씨는 과거 마약 범죄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물을 중심으로 제조 조직을 꾸렸다. 범행 장소로는 유치권 분쟁으로 장기간 공실 상태이던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를 택했다. 일당은 기존에 설치된 CCTV와 주차 차단기 등을 이용해 외부인 출입을 감시하고 별도 창고에 제조 도구와 화공약품을 보관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필로폰 시험 제조를 반복하다 같은 해 10월부터 본격 제조에 들어갔다. 해외 논문과 인터넷에 공개된 과학실험 영상 등을 참고해 제조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와 핵심 기술자 2명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신성의약품 제조 혐의를, 나머지 제조 가담자 2명에게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원료 확보에는 약국 유통망을 이용했다. 일당은 전국 약국에 무작위로 연락해 감기약을 구입하다 한약사 B씨(30대)를 통해 대량 공급받기 시작했다. B씨는 올해 1~6월에만 감기약 1만610통(63만6600정)을 공급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B씨 휴대폰 포렌식 과정에서 이 감기약이 필로폰 제조에 악용된다는 기사를 공유하고 챗GPT에 마약 제조 가능성을 질문한 기록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B씨가 범행을 인식하고도 감기약을 공급했다고 판단해 방조 혐의를 적용했다. 무자격으로 감기약을 판매한 약국 실장과 종업원 관리·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약국 업주 2명에게도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제조된 필로폰 대부분은 압수했지만 일부 유통됐을 가능성을 고려해 판매 경로를 추적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일반의약품 유통 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마약 제조에 사용된 슈도에페드린 함유 일반의약품은 처방전 없이도 구매할 수 있어 현행 체계로는 마약 제조에 이용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찰은 “마약류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의약품과 유해화학물질의 유통 과정을 면밀히 추적해 마약류 불법 제조를 차단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진영기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