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으로 촉발된 AI 혁명이 국내 4대 그룹의 인력 구조를 바꾸고 있다. 로봇 등 피지컬 AI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4대 그룹은 최근 4년 동안 연구개발(R&D) 인력을 최대 20% 늘렸지만 생산직 인력은 최대 13%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는 데다 중국의 추격까지 거세지자 기술 경쟁력 확보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4대 그룹 간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의 R&D 인력은 2022년 8만423명에서 지난해 8만9150명으로 10.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제조 직무 인력은 11만7190명에서 10만2512명으로 12.5% 감소했다. 전체 임직원 가운데 개발 인력 비중은 29.8%에서 34.4%로 높아졌다. 직원 3명 중 1명이 개발 인력이란 의미다.

정통 제조기업인 현대차도 예외가 아니다. R&D 인력은 1만7216명에서 2만599명으로 19.7% 늘어 4개 기업 가운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기술·생산·정비직은 6만6384명에서 6만312명으로 9.1% 감소했다. LG전자는 R&D 인력이 1만9741명에서 2만1570명으로 9.3% 늘고, 국내 생산 인력은 8693명에서 7715명으로 11.3% 줄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을 누리는 SK하이닉스는 연구 인력을 8977명에서 9651명으로 7.5% 늘렸다.

인력에 이어 돈도 R&D로 몰렸다. 이들 4개 기업의 R&D 비용 합계는 2022년 37조2121억원에서 지난해 55조3105억원으로 48.6% 급증했다.
[단독] 공장 대신 '두뇌 싸움' 올인…삼성·현대차 확 달라졌다

中 추격에 AI 전쟁도 격화…R&D에 인력·돈 쏟아붓는 4대 그룹
AI칩·로봇이 새 먹거리로…연구직 최대 20% 늘려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국가산업단지 7공구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만금 인공지능(AI) 밸리’ 조성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대차그룹이 이곳에 가장 먼저 짓기로 한 건물은 자동차 공장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주행·동작 데이터를 모아 자율주행차와 로봇의 ‘두뇌’를 학습시키는 곳이다. 새만금 밸리는 축구장 157개 면적(112만4000㎡)에 들어서지만 과거처럼 수만 명이 상주하지 않는다. AI 데이터센터 한 곳의 상주 인력은 50~100명 수준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생산직 약 3만 명이 근무하는 것과 딴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곳엔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이 주로 상주할 것”이라고 했다.

4대 그룹이 연구 인력을 늘리는 배경엔 AI 혁명이 있다. 기업 경쟁력이 소프트웨어·AI 기술에서 갈리기 시작하면서 연구개발(R&D)이 생존 변수가 됐다. 산업 트렌드가 이르면 수개월 만에 바뀔 만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것도 R&D 투자를 늘린 요인으로 꼽힌다.

◇ 미래 사업에 대거 투자

전통 제조기업인 현대차그룹은 차를 잘 만드는 회사를 넘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자율주행 경쟁력이 미래차 시장의 승부처가 되면서다. 생산 능력과 풍부한 현장 데이터를 갖춘 만큼 로봇도 새 먹거리로 삼고 있다. 현대차가 R&D 인력을 2022년 1만7216명에서 지난해 2만599명으로 19.7% 늘린 이유다. 올초 테슬라·엔비디아 출신 박민우 사장을 자율주행·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첨단차플랫폼(AVP)본부 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도체 특수를 누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R&D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도체는 전 산업을 통틀어 R&D 비중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빨라 공정 기술과 제품 성능을 끊임없이 끌어올려야 해서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R&D와 설비투자에 매출의 30%가량을 쏟아부어야 경쟁력을 지킨다고 분석했다. 두 회사의 R&D 비용은 2022년 29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44조5000억원으로 49% 불었다. LG전자는 기존 주력 사업인 TV 등 가전 사업뿐만 아니라 냉난방공조(HVAC)와 전자장치 사업 확대를 위해 R&D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도 국내 간판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리는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에 오른 비야디(BYD)는 그해 R&D에만 634억위안(약 12조7400억원)을 쏟아부었다.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2023~2025년 R&D와 설비 투자에 1852억위안(약 37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이 회사는 범용 D램(DDR4)을 30%가량 싸게 풀어 시장을 파고든 데 이어 올해 말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송파·기흥…연구 거점도 확대

인력 확보 경쟁은 연구 거점 투자로 이어진다. 현대차그룹은 서울 장지동 복정역 인근에 8조원을 들여 연구 거점 ‘HMG퓨처콤플렉스’를 짓고 있다. 약 10만㎡ 부지에 지하 5층~지상 10층 규모로 조성한다. 기존 연구시설이 낡고 비좁은 데다 곳곳에 흩어져 효율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10만9000㎡ 부지에 2030년까지 20조원을 들여 차세대 반도체 연구단지(NRD-K)를 조성하고 있다. 새 공정을 생산 라인에 넣기 전 미리 시험하는 연구 전용 시설이다. LG전자는 경남 국립창원대 안에 1만3200㎡ 규모 HVAC 연구센터를 짓는다. 압축기, 모터 등 5대 핵심 부품과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을 연구한다.

남은 과제는 인력 확보다. 업계 관계자는 “고학력의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을 지방으로 불러들여야 하는 점이 큰 걸림돌”이라고 했다.

양길성/김우섭 기자/군산=정상원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