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속 우려되는 행정기관 이전
“대사관 등 주요 외교시설이 서울에 있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세종으로 이전하면 업무 연계와 소통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철수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행정안전부의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변경안’ 공청회에서 내놓은 우려다. 정부가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행정 비효율을 해소할 대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수도권 중앙행정기관 등 44곳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법률 개정 없이 이전할 수 있는 31개 기관(5460명)의 계획이 구체화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23개 기관(1831명)은 내년까지 임차청사로 옮긴다. 감사원과 경찰청 등 8개 기관(3629명)은 신청사를 지어 2031년까지 이전한다.

문제는 성급한 이전이 행정 비효율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가 서울과 세종에 분산된 지난 10여 년간 공무원들은 국회 보고, 서울 출장 등으로 두 도시를 오가며 시간과 행정력을 낭비했다. 2033년 세종의사당 건립이 추진되지만 주요 외교시설과 금융회사는 여전히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업무 관행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부처별 국회 출석 인원을 제한하고 전시성 현장 방문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준영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종 내부에서도 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무원의 정주 여건도 문제다. 배우자 직장과 자녀 학업 등으로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둔 공무원은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위원장은 “이사비 지원과 통근버스 운행만으로는 주거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시 공무원 임대주택은 1600여 가구에 불과하고 경쟁률이 31 대 1을 넘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관련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신계용 과천시장은 “2014년에 주요 부처가 다 떠나면서 정부가 발표한 원칙 중 하나가 과천의 행정 기능을 유지해 주겠다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번에 6개 주요 부처가 다 떠나면서 과천시와 한마디 사전 협의 없이 (이전을) 발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막대한 재정 부담도 따른다. 31개 기관의 임차청사 이전과 신청사 건립에 총 1조6557억원의 국민 혈세가 소요된다. 정부 부처 이전은 이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국민적 합의가 없는 밀어붙이기식 이전은 자칫 사회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는 역사성·중대성에 걸맞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번 공청회가 그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