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위험을 몰랐던 게 아니라 믿지 않았다
2005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애널리스트들은 향후 3년간 집값이 매년 5%씩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손실 규모를 계산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단 5%로 평가했다. 집값 하락의 위험을 몰랐던 게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본 것이다. 3년 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세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투자자들의 잘못된 기대와 심리적 편향을 통해 다시 분석한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경제학자 안드레이 슐라이퍼 하버드대 교수와 니콜라 제나이올리 보코니대 교수의 공저 <믿음의 위기>다. 저자들은 투자자와 가계, 기업 등이 실제로 내놓은 경기 전망을 분석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왜곡되는지 살펴본다. 여기에 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수학적 모형으로 발전시켜 신용 팽창과 거품, 금융위기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핵심 가정에 도전하는 시도다.

미국 주택시장이 호황이던 2003~2007년 일부 지역의 주택 구매자들은 앞으로 10년간 집값이 매년 8~13%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상승세가 미래에도 이어지리라 믿은 것이다. 반면 2006년 집값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한 뒤에도 금융시장 전체가 무너질 가능성은 충분히 인식되지 않았다. 금융상품을 통해 위험이 분산돼 있고 중앙은행이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현대 경제학의 핵심 전제인 '합리적 기대 가설'이다.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며,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투자자와 가계,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실제 조사에서는 일정한 방향으로 치우친 예측이 되풀이됐다.

저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념은 '진단적 기대'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연구한 '대표성 휴리스틱'에 바탕을 뒀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접하면 여러 가능성을 고르게 따지기보다 두드러져 보이는 결과에 지나치게 무게를 둔다. 경기가 좋을 때는 낙관적인 전망에 쏠려 위험을 과소평가하지만, 악재가 쌓이면 반대로 최악의 상황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호황기에 거품을 키운 심리가 위기에는 공포를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책은 실제 경기 전망과 금융시장 자료를 분석하고 수학적 모형으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만큼 일반 독자가 가볍게 읽을 만한 경제 교양서는 아니다.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을 흥미롭게 들려주기보다는 경제학적 분석과 이론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둔다. 수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일부 내용을 건너뛰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거나 금융시장이 왜 낙관과 공포를 반복하는지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