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최나경. 아티스트 제공.
플루티스트 최나경. 아티스트 제공.
3000석 대형 홀의 맨 뒷줄에서는 연주자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300석 규모의 작은 홀은 다르다. 플루티스트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이 보이고, 음이 끝난 뒤 남는 떨림이 객석까지 가닿는다.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숨을 나누는 거리다.

연 90회 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최나경Jasmine Choi이 그런 무대를 고향 대전에 차렸다. 11월 27~29일 씨엔씨티마음에너지재단 주최로 대전 김인홀에서 열리는 ‘재스민 페스티벌’이다. 대형 음악제의 예술감독 제안을 번번이 고사해온 그가 택한 길은 ‘더 크게’가 아니라 ‘더 작게’였다. “주최 측은 규모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제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더 작게 만들까였어요. 3000명이 들어가는 홀이 아니라, 50명 앞에서 연주하듯 관객과 긴밀하게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화려하게 출발했다가 3~5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축제를 숱하게 지켜봤다. 사공이 많은 큰 축제에서는 감독으로서 본질을 지키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겉포장이나 직함보다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를 먼저 물었다. 그가 그리는 것은 관객이 먼저 “이건 꼭 가야 해”라고 말하는, 10년, 20년을 버티는 단단한 축제다.

시작은 소박했다. 대전 헤레디움에서 여름마다 열던 프라이빗 살롱 콘서트가 입소문을 타며 정식 축제로 자랐다. 이름을 내걸기 쑥스러워하던 그도 올해 자신의 영문 이름을 딴 ‘재스민 페스티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작은 축제를 고집하는 마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낸 시간과 맞닿아 있다. 최근 빈 무지크페어라인 무대에 섰던 그는 옛 일터인 빈 심포니 건물을 한참 바라봤다.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지낸 그 시절은 꿈에 부푼 날들이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가슴 아픈 사랑 같은 상처”도 함께 남겼다. 그 상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였다. “철이 들었는지, 인생에 낭비되는 경험은 결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이 정한 성공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려 아등바등하던 그는 이제 무엇이 진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끼는 사람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아픔을 지나며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이번 축제도 그 마음에서 출발했다.
피아니스트 키트 암스트롱.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피아니스트 키트 암스트롱.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그래서 무대에는 그가 ‘진짜 친구들’이라 부르는 음악가들이 선다. 피아니스트 키트 암스트롱은 피아노와 작곡, 오르간을 넘나드는 천재다. 2005년부터 거장 알프레트 브렌델에게 배웠고, 2018년 ‘베토벤 링’을 받았다. 두 사람은 커티스 음악원에서 열일곱 고등학생과 일곱 살 신동으로 처음 만났다. 어린 키트가 사람이 연주할 수 없는 리듬의 목관오중주를 써 와 오보에를 맡은 학생이 화를 낸 적도 있지만, 알고 보니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앞뒤 재지 않고 달려와 편곡까지 도맡았다.

오보이스트 올리비에 두아즈는 23세에 파리 오페라 수석으로 발탁됐고, 2010년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을 맡고 있다. 대전에 와달라는 부탁에 그는 “네 고향 무대라면 당연히 가야지”라며 흔쾌히 응했다.
오보이스트 올리비에 두아즈.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오보이스트 올리비에 두아즈.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더블베이시스트 마크 앙드레.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더블베이시스트 마크 앙드레. 재스민 페스티벌 주최측 제공.
2002년생 프랑스 더블베이시스트 마크 앙드레는 이번이 한국 첫 무대다. SNS 연주 영상으로 조회 수 1000만 회를 넘긴 그는 더블베이스 연주자로는 처음 워너 클래식스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반주 악기에 머물던 더블베이스를 독주 악기의 자리로 끌어올리고 있다.

어머니가 투병하던 지난해, 그는 슬픔과 깊이를 담은 곡으로 무대를 채웠다. 올해는 온전한 ‘셀러브레이션’이다. 솔로에서 듀엣, 트리오를 거쳐 넷이 함께하는 갈라 콘서트까지, 낯선 악기 조합의 화음과 ‘윌리엄 텔’ 같은 화려한 기교로 온 가족이 즐길 무대를 꾸렸다. 고향에 건네는 선물로 마련한 무료 마스터클래스에는 전국에서 신청이 쏟아졌다. “대전에 오셔서 좋은 음악 들으시고, 유명한 빵도 드시면서 도시의 매력을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