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를 떠올려 보자. 누군가 종을 치면 그 떨림은 공기를 건너 우리 가슴뼈까지 와 닿는다. 물리학은 이것을 공명(共鳴, resonance)이라 부른다. 한 물체가 외부의 진동에 반응해 함께 울리는 현상이다.
이 칼럼에 '문화공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내 마음속에 울린 것도 바로 그 종소리였다. 그림 한 점, 영화 한 편, 노래 한 소절, 시 한 줄이 감상을 넘어 작품과 시대, 사람과 사회 사이에서 서로를 울리는 순간. 그것이 이 이름에 담고 싶은 뜻이다.
다만 첫 회이니, 먼저 칼럼의 문패로 삼은 '공명'이라는 말부터 풀어 보려 한다. 공명에는 두 얼굴이 있다. 서로 마주 보며 주고받는 쌍방향의 울림이 있는가 하면, 종소리가 한쪽으로 번져 가듯 방향을 지닌 울림도 있다. 후자를 미디어 연구에 끌어들인 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스쿨을 오래 이끈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다.
거브너는 1960년대 말부터 텔레비전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어떻게 빚는지 추적했고, 1976년 이를 '문화계발효과이론(cultivation theory)'으로 정리했다. TV를 오래 보는 사람일수록 현실을 화면 속 세계와 닮은 모습으로 믿게 된다는 이론이다. 범죄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이 세상을 실제보다 위험한 곳으로 여기는 식이다.
1980년, 거브너는 이론을 한층 다듬으며 여기에 '공명'이라는 개념을 보탰다. 미디어 속 장면이 시청자의 실제 경험과 겹칠 때 메시지는 두 번 울린다. 범죄가 잦은 동네에 살면서 범죄 뉴스를 많이 보는 사람은 같은 뉴스를 보는 다른 이보다 훨씬 큰 두려움을 느낀다. 거브너는 이를 '이중 투여(double dose)'라 불렀다. 현실과 화면이 같은 음을 낼 때, 그 소리는 실제보다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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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울림이 언제나 두려움만 키우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의 공명을 목격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오픈런'이다. 2025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은 650만 명을 넘어 개관 80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전년의 1.7배다.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뉴스페이퍼》의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에서도 루브르와 바티칸에 이어 3위에 올라 영국박물관을 앞질렀다.
영화 속 호랑이와 까치는 조선 민화 〈호작도〉에서 걸어 나왔다. 화면에서 본 이미지를 박물관의 실물 앞에서 다시 확인하는 순간, 울림은 한 번 더 커진다. 거브너의 공명이 '현실에서 미디어로' 향했다면, 이번 공명은 '미디어에서 현실로, 그리고 다시 미디어로' 도는 순환이었다. 그 파동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발길을 한국으로 이끌었고, 유럽 문화에 견줘 덜 알려졌던 우리 역사문화에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더피와 19세기 <호작도>. 출처. 한경DB
사실 이 칼럼이 진정 꿈꾸는 것은 쌍방향의 공명이다. 미술과 음악, 문학과 영화를 매개로 잔잔하고 편안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한쪽으로 번져 가는 거브너의 공명을 따라가다 보니, 질문 하나가 마음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품격 있는 한국 문화를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할 수 있을까. 다소 목적의식이 앞서는 이야기지만, 말이 나온 김에 첫 회는 이 질문과 씨름해 보려 한다.
유럽에는 성경과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고, 셰익스피어와 괴테, 나폴레옹이 있다. 세계인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 품고 사는 이야기들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의 반가사유상 두 점, 이건희 컬렉션의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 〈추성부도〉는 이미 세계인의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다. 이 컬렉션은 머지않아 서울 송현동에 들어설 이건희 기증관(가칭)에서 새 관객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한류를 위해서는 더 풍성한 이야기의 곳간이 필요하다.
그 곳간을 채우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02년부터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으로 신화와 민담, 옛 기록을 창작 소재로 다듬었고,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전국 지방문화원과 함께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지원사업'을 펼쳐 왔다. 필자도 몇 해 그 심사에 참여했다. 솔직히 말해 세계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원천콘텐츠는 아직 많지 않다. 그래서 더 꾸준해야 한다. 한때 세계를 사로잡았던 〈대장금〉의 기억도 세월 속에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지 않은가.
1604년 가을, 하늘에 낯선 별 하나가 떠올랐다. 훗날 '케플러 초신성'이라 불리게 될 별이다.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가 프라하에서 이 별을 처음 본 것은 10월 17일. 조선 관상감의 관원들은 그보다 나흘 앞선 10월 13일에 이미 같은 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조실록〉에는 1604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일곱 달 동안 130여 차례, 거의 매일같이 그 별의 밝기와 크기를 목성·금성에 견주어 적어 내려간 기록이 남아 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이 기록을 더해 그 별이 어떤 유형의 초신성이었는지를 가려냈다.
〈세종실록〉에 남은 1437년의 '객성(客星)' 기록은 또 어떤가. 201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는 이 기록을 실마리로 580년 전 폭발한 신성의 흔적을 찾아냈다. 사관의 붓끝이 수백 년을 건너 현대 과학의 데이터가 된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암호가 하나씩 풀려 가는 느낌이 아닌가.
나는 이런 이야기가 제2, 제3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첫 회는 '국뽕'이라는 핀잔을 무릅쓰고 목적의식을 품고 썼다. 세계인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구심력, 그리고 한국에서 세계로 번져 가는 울림. 그 문화공명의 기원을 적어 두고 싶었다.
다음 회부터는 전략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조금 더 편안하고 감성적인 걸음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려 한다. 종은 이미 울렸다. 이제 그 여운을 함께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