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마음 가는 곳에서 잠시 머물면 깊은 게절이 인사를 건넨다. 서로 이웃한 충남 예산과 천안으로 가을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초 건축물을 만나는 예산 수덕사, 한없이 걷고 싶은 덕산 메타세쿼이아길. 위로 천안에는 큰 부처님 계신 각원사, 버스커 버스커 노랫말에도 등장한 호수가 우리를 기다린다.
예산 수덕사(사진=이효태)
예산 수덕사(사진=이효태)
덕산온천·메타세쿼이아길|걷고 난 뒤 온천의 온기
덕산은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온천 휴양지다. 지난 1917년 첫 온천탕이 문을 연 이래 숙박·목욕 시설이 모인 온천관광지로 성장했다. 일대에 아름다운 산책길도 눈길을 끈다. 약 450m에 이르는 메타세쿼이아길이다.
덕산 메타세쿼이아길(사진=이효태)
덕산 메타세쿼이아길(사진=이효태)
곧게 자란 나무 사이를 오가며 계절의 변화를 머금은 큰 나무를 바라본다. 길 가운데 놓인 빨간 ‘사랑의 우체통’ 앞에서 전하고 싶은 이에게 엽서도 써본다. 예산에서 황새가 자연 부화한 날을 기념해 매년 7월 23일 엽서를 발송하는 느린 우체통이다.
덕산온천족욕장(사진=이효태)
덕산온천족욕장(사진=이효태)
산책의 마무리는 덕산온천 족욕장이다. 지난 2025년 9월 재단장을 마친 족욕장은 비바람을 막는 지붕과 유리 벽면, 곡선형의 편백나무 의자를 두었다. 발을 씻고 따뜻한 온천수에 담그면 걷던 발끝에 온기가 퍼진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족욕 후 발 닦을 수건을 챙겨가면 편리하다.

수덕사|산사 가는 길에 맛과 그림 한 점
수덕사에서 법당으로 향하는 길은 만만치 않다. 대형 주차장 너머로 식당과 먹거리 가게, 소품숍이 즐비해 어느새 구경하다보면 걸음은 한껏 느려진다. 행인을 유혹하는 산채비빔밥 식당을 점 찍어두고 내려올 때 들르리라 다짐해본다. 발걸음을 재촉해 일주문을 지난다. 덕숭산 자락을 따라 늘어선 전각들이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덕사 대웅전(사진=이효태)
수덕사 대웅전(사진=이효태)
백제 위덕왕 때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덕사는 경허·만공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 수행의 역사가 깊다. 국보 대웅전은 우리나라에 남은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1308년 고려시대 건립했다. 대웅전은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대웅전 정면의 배흘림기둥 곡선을 살펴보고, 지붕 아래 목재의 짜임을 눈여겨보자.
수덕사 선미술관(사진=이효태)
수덕사 선미술관(사진=이효태)
일주문 부근에 선미술관도 놓치기 아쉽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불교 전문 미술관으로 고승들의 글씨와 그림과 함께 이웃한 수덕여관에서 발견한 고암 이응노의 습작 등 50여 점도 소장하고 있다. 내부에 기념품숍도 자리해 작가들의 도자기와 소품을 구경하며 색다른 쇼핑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긴 거리를 완주하는 부담 없이
저마다의 속도로 둘러보기 예산·천안 여행지"

각원사|청동대불 앞에서 돌아보는 사찰의 시작
태조산 자락의 각원사는 '청동 아미타불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좌대를 포함한 높이 15m, 무게 60톤. 가까이 다가서면 엄청난 규모가 한 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다. 조금 물러서 불상을 올려다보면 내려뜬 눈과 입가의 자애로운 미소가 보인다.
각원사 청동대불(사진=이효태)
각원사 청동대불(사진=이효태)
6·25전쟁을 겪은 경해법인 스님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지난 1975년 각원사 창건을 추진했다.재일동포 부부의 시주를 바탕으로 1977년 5월 9일 봉안한 청동대불에도 같은 염원이 담겼으니, 알고 보면 더욱 경건한 마음이 든다.
태조산과 각원사(사진=이효태)
태조산과 각원사(사진=이효태)
대웅보전 기와지붕 너머로 청량한 태조산의 숲이 보인다. 계절은 짙은 가을에서 또 겨울로 새 그림을 그릴 것이다. 각원사에서 천호지는 차로 약 10분 거리이니, 천안에 들렀다면 두 명소를 꼭 들러보자.

천호지|노래 속 호숫가에서 쉬어가는 저녁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바로 앞에 자리해 ‘단대 호수’로 더 익숙한 천호지.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 속 “단대호수 걷자고 꼬셔”라는 노랫말로 천안 밖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지난 1957년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는 이제 학생과 시민들이 걷고 쉬어가는 일상의 쉼터가 됐다.
천호지 호수둘레길(사진=이효태)
천호지 호수둘레길(사진=이효태)
호숫가에 조성한 천호지 근린공원은 수변정원길과 초록마당, 하늘마당 등을 지나며 2.3km 이르는 수변 풍경을 두루 살필 수 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벤치에 앉아 잔물결을 바라보거나, 나무에 기대어 하늘빛 머금은 호수 풍경을 바라보면 평화로운 마음이 깃든다.
단대호수로도 불리는 천호지(사진=이효태)
단대호수로도 불리는 천호지(사진=이효태)
물오리가 헤엄치는 호수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수달도 산다. 학생과 시민들이 쉬어가는 휴식처가 야생동물에게는 살아갈 터전이다. 호수에 함께 깃든 생명들을 생각하며 바삐 걷던 걸음을 조금 늦춘다.
정상미 기자 vivi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