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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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을 좋아해서 '런트립'을 즐겼는데 요즘은 캠핑과 웰니스 프로그램을 연계한 여행을 따라다녀요." 30대 직장인 전모 씨의 여행은 지도가 아니라 '하고 싶은 활동'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요즘 새로 생긴 여행 이름에는 '지명'이 없다. 런트립, 북캉스, 빵지순례, 덕질투어, 짐케이션 모두 장소가 아닌 여행지에서의 '활동'을 의미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휴가 떠나기 전 좋아하는 취미와 관심사를 여행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행지가 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시기까지 바뀌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도 '2027 관광트렌드 전망 및 분석'에서 일상의 취미가 휴가로 이어지는 '라이프케이션'(라이프+베케이션)과 새로운 장소로 휴가지가 넓어지는 '피서로밍'을 주요 변화로 꼽았다.

미술관은 이런 변화가 잘 드러나는 곳 중 하나다. 실내 문화공간에서 여가를 보내거나 여행 일정에 전시 관람을 포함하는 식이다. 관광공사 소비자 조사에서도 지방이나 해외 미술관을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여름(7~8월) 전체 방문량이 전년보다 약 1.3% 줄어드는 동안 전시관 방문은 1.62% 늘었고, 박물관·전시관 소비는 8.17% 증가했다.

지역 문화공간도 관광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한 지역 미술관과 전시관은 지역을 찾는 방문객에게 새로운 여행 동기를 제공한다. 경기도 양주 장흥관광지처럼 자연환경과 문화예술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도 여름철 피서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여행 목적이 휴식이나 관광 명소 방문에 한정되지 않고, 평소 관심을 두던 분야를 직접 경험하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달라진 여름과 빠듯해진 지갑이 있다. 폭염이 한창이던 한 주간 티맵 목적지 설정 건수를 보면 테마파크는 전년보다 37.7% 줄고 극장은 52.1% 늘었다. 휴가를 미루거나 포기한 이유로는 여행 경비 부담(24.5%)이 가장 많이 꼽혔다.

그렇다고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관광공사는 경제적 부담 속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경험에 소비를 집중하고, 일상의 취미를 휴가에서도 즐기려는 욕구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어디든 다녀오는 여행 대신, 돈과 시간을 들일 이유가 분명한 여행을 고른다는 뜻이다.

여행의 순서가 바뀌자 호텔업계 셈법도 달라지고 있다. 취향 중심 여행을 상품으로 연결하고 있다. 전시 관람과 숙박을 묶은 콘텐츠부터 리조트 내 러닝 코스와 장비 대여 서비스까지, 숙박시설이 잠만 자는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즐기는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조선팰리스 객실. 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조선팰리스 객실. 사진=조선호텔앤리조트
조선 팰리스는 스페인 미술 전시와 호텔 미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아트 스테이 패키지를 선보였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전시 관람권이 포함된 상품이다.
소노 런트립 프로그램. 사진=소노인터내셔널
소노 런트립 프로그램. 사진=소노인터내셔널
소노인터내셔널은 전국 18개 호텔·리조트의 러닝 코스를 잇는 '소노 런트립 180K'를 운영한다. 전국 18개 소노호텔앤리조트의 10㎞ 달리기 코스를 하나의 여정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앞서 소노캄 경주와 보문관광단지 일대에서 열린 '소노 런트립 180k in 경주'에 이어 보문호수 일대에서 달리기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소노 런트립 스테이 in 소노캄 경주' 를 선보였다.
그랜드 켄싱턴 설악비치_로비층에 전시된 카렐 아펠(Karel Appel)의 작품. 사진=이랜드파크
그랜드 켄싱턴 설악비치_로비층에 전시된 카렐 아펠(Karel Appel)의 작품. 사진=이랜드파크
이랜드파크의 회원제 리조트 그랜드 켄싱턴 설악비치는 리조트 전체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별도 전시장뿐 아니라 로비와 라운지 등 고객 동선에 맞춰 작품을 배치해 투숙객이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미술 작품을 감상하도록 했다. 니키 드 생팔을 비롯해 카렐 아펠, 살바도르 달리 등 20세기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랜드파크 관계자는 "최근 호텔과 리조트는 단순한 숙박과 휴식의 공간을 넘어 문화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특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별도의 전시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투숙하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휴양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호텔업계 경쟁 기준도 넓어지고 있다. 카시아 속초는 조각가 김선영의 작품 45점을 로비와 볼룸 입구, 베이커리 카페 등에 놓고 2028년까지 전시할 계획이다.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3000여 점에 이른다. 달리기 행사로 손님을 부르는 호텔도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오는 8일 남산 일대 약 5㎞를 달린 뒤 호텔에서 DJ 음악을 즐기는 아침 행사를 연다. 모집인원은 총 300명으로 참가비 일부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부된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숙박시설이나 입지뿐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문화예술, 웰니스 등 고객의 취향과 관심사를 반영한 체험형 콘텐츠가 호텔과 리조트의 매력을 한층 높이고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