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수출 1조달러'에 도사린 對美 무역불균형
한국 수출액은 지난 9월 1211억달러였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다. 올해 1월부터 누적으로는 8147억달러로 작년 전체 실적(7093억달러)을 이미 뛰어넘었다. 연말까지 1조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흑자 역시 놀랍다. 지난 한 달 500억달러, 누적 2524억달러다.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소득, 이전거래까지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2분기 1166억달러로 독일(523억달러)과 일본(506억달러)을 합친 규모보다 많았다.

한국 경제가 쌓아올린 찬란한 금자탑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질시의 대상일 수 있다. 그 누군가가 세계 최강대국이면서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대미 교역은 올 들어 9월까지 수출 1518억달러, 수입 671억달러였다. 수출이 수입의 2.3배다. 심한 무역 불균형이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초호황으로 가격이 급등한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사들인 곳이 미국 빅테크와 AI 데이터센터 전문기업이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인 TSMC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간 수출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무역은 누군가 흑자를 내면 다른 누군가는 적자를 내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가 간 갈등을 초래하는 근본적이면서도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1980년대 세계 경제를 휘어잡았던 일본이 무너진 것도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끌어올린 플라자합의, 반도체 수출가격을 통제한 반도체협정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보내야 했다. 플라자합의가 이뤄지기 직전 해인 1984년 일본의 대미 수출액은 600억달러, 수입액은 230억달러였다.

거의 10년간 지속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전쟁 역시 무역 불균형에서 시작됐다. 양국 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7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은 5060억달러, 수입은 1300억달러였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으로 경제를 살리고 군사력까지 키우는 중국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 입장이다.

이런 미국이 무역흑자를 대규모로 늘린 한국을 좋게 봐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미국이 세계 각국에 대한 관세율을 발표했을 때 무역흑자를 기준으로 세율을 차등화한 전례가 있다. 한국에 처음 제시한 숫자는 25%였다. 이를 15%로 낮추느라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 들어 9월까지 대미 무역흑자(847억달러)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늘어났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압박을 시작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7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등 한국에 생산시설을 확대하려는 계획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 수출을 늘릴 생각을 하지 말고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제재하고 있다는 의심도 제기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은 최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기업들에 부과한 과징금이 평균 390억원으로 지나치게 많다며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민감한 대북 관련 정보 소통 중단, 한국 유력 정치인에 대한 미국의 입국 거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둘러싼 이견 등 여러 논란이 겹쳤다. 양국 주재 대사들마저 “소통이 잘 안된다”고 말할 정도다.

당장 내년이 걱정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의 무역흑자를 겨냥해 반도체 수출가격을 통제하거나 한국산 제품 전반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석유와 가스 등 미국산 상품 수입 비중을 의도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추가 세수 등으로 조성되는 미래대응기금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거나, 한미전략투자공사를 통해 추가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이런 시도들이 무역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과의 경제전쟁으로 번지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