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넷플릭스 ‘피지컬 100: 멕시코’ 더빙 시연에 나선 박상훈(왼쪽)·최우성 성우. 넷플릭스 제공
지난 23일 넷플릭스 ‘피지컬 100: 멕시코’ 더빙 시연에 나선 박상훈(왼쪽)·최우성 성우. 넷플릭스 제공
“이번 대결에서 ‘죽을 똥을 싸더라도’ 이기고 싶어요.”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멕시코판에 나온 한국어 더빙 대사다. 승부욕 넘치는 선수들의 거칠고 절박한 감정을 한국어 구어체로 맛깔나게 옮겼다. 스페인어를 ‘피벗 언어(매개어)’인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순화된 자막 ‘정말 죽어라 노력해서 이기고 싶어요’보다 생동감이 크게 살아났다.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 픽셀로직코리아 녹음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정령 ‘피지컬 100: 멕시코’ 더빙 프로듀서(PD)는 “시선이 아래로 고정되는 자막과 달리 더빙은 참가자의 움직임과 표정, 눈빛을 자세히 느낄 수 있어 ‘피지컬 100’ 같은 프로그램에 어울린다”고 말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더빙파’보다 ‘자막파’가 많다. 2022년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더빙 선호도는 25%로 독일(76%), 일본(46%) 등과 비교해 낮다. 대사가 순화되며 원작 특유의 말맛이 사라진다는 인식이 크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10년간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면서 국내 성우와 번역가, 음향 전문가가 모인 더빙 생태계에 새로운 제작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작품에 따라 많게는 36개 언어의 더빙을 제작하는데, 최근 한국어 더빙도 애니메이션부터 영화·드라마·예능으로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더빙은 자막과 비교해 제작 단가가 비싼 편이다. 1시간 분량 콘텐츠 한 편에 녹음만 최소 이틀이 걸리는데, 음향 믹싱 등을 거치면 작업 기간은 최소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이날 넷플릭스 협력사인 픽셀로직코리아에서 더빙 시연을 위해 두 명의 성우가 3분 안팎의 장면 한 컷을 연기했는데, 작업에만 20여분이 소요됐다.

김민수 픽셀로직코리아 오퍼레이션 디렉터는 “녹음과 후반 작업뿐 아니라 대본 현지화 과정까지 고려하면 시리즈 당 수개월은 걸리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작품 한 편을 하나의 언어로 더빙하는 프로젝트에는 통상 관련 인력이 50~60명에 달한다.

더빙 작품이 늘어나며 활동무대가 좁아졌던 성우 등 관련 인력 생태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활동 성우는 300여 명으로 파악된다. ‘피지컬100: 멕시코’에 참여한 박성훈 성우는 “한국어 공부 등을 목적으로 해외에서도 우리 더빙을 시청한다는 얘길 들으면서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게 전달하려 한다”고 했다. 프리랜서 성우 2년 차인 최우성 성우는 “동료들끼리 ‘지금이 성우에게 가장 좋은 시기’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