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컨택트'.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공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컨택트'. 파라마운트 픽처스 제공
미국 할리우드에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단편소설의 영상화 판권을 거액에 사들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출판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외면받던 단편소설이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의 새로운 지식재산권(IP) 확보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미출간 단편소설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 규모의 거래에 나서고 있다.

영국 작가 니컬러스 빈지는 미출간 단편소설 <언더스터디(Understudy)>를 넷플릭스에 시리즈 개발용으로 판매해 100만달러(약 13억2000만원)를 받았다. 이 작품은 한국 범죄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한 배우가 오래된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빈지는 작품을 문예지나 출판사에 투고하지 않고 곧바로 할리우드에 판매했다. 이 작품은 책으로 출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유니버설픽처스는 2024년 시나리오 작가 콜린 배넌의 단편소설 <롱 로스트(Long Lost)>를 구매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작자로 참여시켰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도 지난해 해리슨 쿼리의 <코드 블랙(Code Black)> 판권을 확보했다. 두 작품의 거래 금액은 각각 100만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가 단편소설에 주목하는 이유는 짧은 분량과 각색의 유연성 때문이다. 수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 빠르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장편소설과 달리 기존 독자들의 원작 충실도에 대한 기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제작진이 이야기의 설정과 전개를 영상에 맞게 확장하기에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모든 단편소설이 영상화 대상으로 각광받는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에이전트들은 문학적 완성도뿐 아니라 명확한 사건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현실과 비슷한 세계에 독특한 설정 하나를 더한 장르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 창의 단편소설이나 '메멘토'의 바탕이 된 조너선 놀런의 미출간 단편소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전통 출판시장에서 단편소설집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 소설 출판 계약에서 단편소설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5.5%에 그쳤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