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뉴욕 5번가, 한 여성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티파니 쇼윈도 앞에 선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이 장면은 보석을 왕실과 귀족의 소유물로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나, 티파니를 도시 여성이 꿈꾸는 삶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뉴욕에서 시작한 티파니는 영화를 만나 도시의 상징을 넘어 전 세계가 동경하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미국의 럭셔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궁정과 장인 길드의 질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오래된 계보의 빈자리를 설명하는 대신, 영화와 광고, 백화점과 리테일, 호텔과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사람들이 꿈꾸는 삶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웠다. 유럽 럭셔리가 오랜 유산을 권위의 기반으로 삼았다면, 미국은 그 꿈을 이미지와 상품, 경험으로 확장하는 데 강했다.
궁정을 대신한 스크린
20세기 초,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는 미국에 새로운 궁정을 만들었다. 배우들은 영화 속 인물로만 남지 않았다. 그들이 입은 옷과 주얼리, 헤어와 메이크업은 현실에서 대중이 따라 하고 싶은 스타일이 되었다. 왕실의 혈통 대신, 스크린은 새로운 스타를 계속 만들어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사인. 할리우드는 왕실 대신 스타를 만들고, 스크린을 통해 럭셔리를 대중이 꿈꾸는 삶의 이미지로 확장시켰다. / 출처. Unsplash
그 변화는 화장품의 역할도 바꾸었다. 맥스 팩터(Max Factor)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가발 제작자, 발명가였다. 그는 초기 영화의 카메라와 조명에 맞는 화장을 고민했다. 무대용 분장은 스크린에서 과장되어 보이기 쉬웠다. 1914년 그는 두꺼운 무대 분장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배우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영화용 메이크업을 개발했다. 이후 영화 현장에서 발전한 그의 메이크업 기술은 일반 소비자를 위한 화장품으로 확장되었다.
주얼리에서는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이 할리우드와 하이주얼리를 연결했다. 1932년 뉴욕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뛰어난 다이아몬드와 하이주얼리로 이름을 알렸고, 해리 윈스턴 자신은 훗날 ‘다이아몬드의 왕’이라 불렸다. 1935년 그가 매입한 726캐럿 존커 다이아몬드는 미국 전역을 순회했고, 셜리 템플과 클로데트 콜베르 같은 배우들과 함께 촬영되며 하이주얼리를 대중의 관심 속으로 끌어냈다.
1944년 해리 윈스턴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여배우에게 주얼리를 제공한 최초의 주얼러가 되었다. 유럽의 하이주얼리가 왕실과 귀족의 주얼러를 통해 권위를 얻었다면, 미국의 해리 윈스턴은 ‘스타들의 주얼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권위를 만들었다.
해리 윈스턴의 하이주얼리. 유럽의 하이주얼리가 왕실과 귀족의 주얼러를 통해 권위를 얻었다면, 미국의 해리 윈스턴은 ‘스타들의 주얼러(Jeweler to the Stars)’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와 함께 새로운 권위를 만들었다. / 출처. 해리 윈스턴 홈페이지
할리우드는 스타의 얼굴과 몸 위에 럭셔리를 올리고, 그것을 대중매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 바라보게 했다. 사람과 장면을 통해 동경을 만드는 방식은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문법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유럽의 럭셔리 메종들도 영화제와 레드카펫, 앰배서더를 통해 이를 활용한다.
뉴욕, 럭셔리의 세계 무대
뉴욕 5번가. 세계 럭셔리 브랜드들이 모인 이 거리는 쇼윈도와 리테일을 통해 뉴욕을 글로벌 럭셔리의 무대로 만들었다. / 출처. Unsplash
할리우드가 스타의 이미지로 동경을 만들었다면, 뉴욕은 그것을 리테일과 광고, 매거진을 통해 구체화했다. 미국 럭셔리의 모든 출발점이 뉴욕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패션과 주얼리, 뷰티가 소비자에게 각인되는 과정에서 뉴욕의 의미는 컸다. 5번가의 쇼윈도와 백화점, 플래그십 스토어는 쇼핑을 단순한 구매 행위가 아니라 브랜드와 도시를 함께 경험하는 일로 바꾸었다. 그곳에서 소비자가 만나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다. 건축과 진열, 서비스가 하나로 이어지며 브랜드가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지 보여준다.
뉴욕 5번가의 티파니 랜드마크(The Landmark). 1940년부터 이곳에 자리한 티파니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뉴욕 5번가를 대표하는 럭셔리 리테일 공간 중 하나다. / 출처. 티파니앤코 홈페이지
그 가운데 티파니(Tiffany & Co.)는 뉴욕에서 태어난 럭셔리가 어떻게 세계적 상징이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브랜드다. 1837년 뉴욕에서 시작한 티파니는 1845년 주얼리와 은제품, 오브제를 소개하는 ‘블루 북(Blue Book)’ 카탈로그를 펴냈다.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티파니의 제품과 스타일을 만날 수 있게 한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후 1886년 선보인 티파니 세팅(Tiffany Setting)은 다이아몬드를 밴드 위로 들어 올려 더 많은 빛을 받게 하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약혼반지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티파니 세팅(Tiffany Setting). 1886년 선보인 티파니 세팅은 다이아몬드를 밴드 위로 들어 올려 빛을 더 많이 받도록 한 디자인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 약혼반지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 출처. 티파니앤코 홈페이지
티파니 블루 박스와 5번가 쇼윈도는 주얼리를 사랑과 약속, 기념의 순간과 연결했다. 티파니가 미국 럭셔리에서 중요한 이유는 오래된 역사만이 아니다. 뉴욕의 리테일 문화를 통해 주얼리를 사랑과 약속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시킨 데 있다.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는 뉴욕의 백화점 매장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고객에게 직접 다가갔다. 1946년 회사를 세운 그녀는 제품을 진열해두고 기다리는 대신,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피부에 직접 발라보게 했으며 샘플을 건넸다.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은 에스티 로더의 ‘하이터치(High-Touch)’ 서비스 전통으로 이어졌다. 제품의 효능을 광고로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자신의 피부에서 확인하고 다시 찾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응대와 체험은 미국 프레스티지 뷰티가 고객 경험을 판매로 연결한 방식을 잘 보여준다.
에스티 로더의 초기 뷰티 카운터. 에스티 로더는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설명하고 피부에 발라보게 하는 ‘하이터치(High-Touch)’ 서비스를 통해 프레스티지 뷰티의 판매 방식을 바꾸었다. / 출처.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 홈페이지
랄프 로렌(Ralph Lauren)이 확장한 것은 패션이 아니라, 미국식 삶의 이미지였다. 1967년 넥타이 라인으로 출발한 그는 ‘폴로(Polo)’라는 이름 아래 폴로 경기, 아이비리그, 컨트리클럽, 승마와 요트의 이미지를 엮었다. 그의 옷은 특정 계층의 복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방식을 패션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광고 속 저택과 잔디밭, 말과 가족의 이미지는 옷을 넘어 미국인이 동경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뉴욕 매디슨 애비뉴의 랄프 로렌 맨션(867 Madison Avenue). 랄프 로렌은 패션을 넘어 저택과 인테리어, 서비스가 어우러진 공간을 통해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브랜드 세계로 보여주었다. / 출처. 랄프 로렌 홈페이지
뉴욕의 힘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서 태어난 브랜드들도 뉴욕에서는 쇼윈도와 광고, 매장과 매거진을 통해 세계의 소비자와 다시 만난다. 이 도시는 럭셔리를 태어난 곳의 역사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롭게 읽히게 만들었다.
경험으로 확장된 럭셔리
나파밸리를 처음 방문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네피트 본사를 다녀온 뒤였다. 샌프란시스코를 뒤로하고 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자, 풍경은 전혀 다른 속도로 바뀌었다. 도심의 활기 대신 포도밭과 낮은 건물, 잘 정돈된 길이 이어졌다. 그때 방문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지역의 가치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오래된 샤토나 가문의 이름보다 나파밸리의 가능성과 품종의 개성, 생산자의 비전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은 나파밸리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미국의 럭셔리는 상품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이 이동하고 머물고 보고 먹고 즐기는 시간까지 가치의 일부로 만들었다.
리츠칼튼 호텔 로비. 리츠칼튼은 브랜드가 공유하는 서비스 기준인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s)’를 통해 일관된 고객 경험을 만들어온 미국식 럭셔리 호텔의 대표 사례다. / 출처. 리츠칼튼 홈페이지
리츠칼튼(The Ritz-Carlton)은 미국식 럭셔리 서비스가 조직의 방식으로 정립된 과정을 보여주는 호텔 브랜드다. 유럽의 그랜드 호텔이 세심한 환대와 개인화된 서비스의 전통을 만들었다면, 리츠칼튼은 이를 미국에서 체계화하며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로 성장했다. 리츠칼튼의 ‘골드 스탠더드(Gold Standards)’에는 서비스 철학과 응대 방식, 직원이 공유해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다. 이를 교육과 운영에 적용함으로써 서비스가 직원 개인의 재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브랜드의 방식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사막 위에 도시 자체를 만든 라스베이거스도 지역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례다. 많은 여행지가 자연경관이나 오래된 유적, 역사적 장소를 바탕으로 사람을 불러들였다면, 라스베이거스는 호텔과 공연, 카지노, 레스토랑, 쇼핑이 결합된 복합 리조트를 통해 머무는 시간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었다. 이 도시는 주어진 풍경에 기대지 않고, 즐길 거리를 직접 만들어 하나의 산업으로 키웠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경. 자연경관이나 유적 대신, 호텔과 공연, 쇼핑, 미식을 결합한 복합 리조트를 통해 도시 자체를 하나의 여행 목적지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 / 출처. Unsplash
나파밸리는 유럽의 와인 산지와 다른 조건에서 세계적 이름이 되었다. 보르도와 샹파뉴, 토스카나에는 오래된 샤토와 가문, 등급과 지역의 권위가 있었다. 반면 나파밸리는 그 계보 밖에서 품질을 증명해야 했다.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스택스 립 와인 셀라(Stag’s Leap Wine Cellars)와 샤토 몬텔레나(Château Montelena)가 캘리포니아 와인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고, 로버트 몬다비는 나파밸리 와인이 유럽의 명문 와인과 겨룰 수 있다는 비전을 일찍부터 내세운 인물이었다. 이후 나파밸리는 테이스팅 룸과 레스토랑, 리조트와 와인 트레인 같은 방문 요소를 더하며 와인을 산지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확장했다.
스택스 립 와인 셀라의 포도밭.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이 와이너리의 1973년 S.L.V. 카베르네 소비뇽이 레드 부문 1위에 오르며 캘리포니아 와인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 사진제공. 아영FBC
이렇게 보면 미국의 럭셔리는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은 왕실 대신 스타를, 프라이빗한 살롱 대신 대중매체와 리테일을 새로운 럭셔리의 무대로 삼았다. 할리우드가 꿈을 이미지로 만들고 뉴욕이 이를 상품과 라이프스타일로 유통했다면, 호텔과 라스베이거스, 나파밸리는 럭셔리를 머무는 시간과 기억되는 경험으로 확장했다.
나라별로 브랜드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럭셔리는 하나의 고정된 양식이 아니라 각 사회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에서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탈리아는 도시의 다양성을, 프랑스는 국가가 만든 기준을, 스위스는 정밀함과 신뢰를, 독일은 기능을, 영국은 태도를 통해 자신만의 럭셔리를 만들었다. 브랜드에도 저마다의 테루아가 있다면, 미국의 토양은 오래된 유산보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삶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었다. 이 나라는 그 꿈을 이미지로 만들고, 상품으로 유통하고, 기억할 만한 시간으로 남겼다.
아모레퍼시픽, LVMH, 리치몬트 등 글로벌 럭셔리 기업에서 20년간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담당해 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스튜디오 ‘브랜드 소리’를 운영하며 브랜드 전략과 고객 경험을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럭셔리가 만들어지고 지속되는 방식을 해석한다. 『나는 뷰티를 홍보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