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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개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자연이 대신 말을 건네 왔다 [서병철의 은퇴 후 잘사는 법]
지상·상공·허공에서 입체적 경외의 순간,
해방감을 느끼며 ‘생각의 높이’를 올리다
해방감을 느끼며 ‘생각의 높이’를 올리다
70여 개 언어의 장벽과 제국주의의 상흔
너비 1.7km, 높이 108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물줄기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에 걸쳐 있다. 먼저 잠비아 측 폭포로 향했다. 우의가 필수라는 조언에 상인과 흥정하여 녹색 우의를 하나 구매했다. 거래 중 우연히 대화를 나눈 잠비아 청년이 물었다.
“당신네 나라는 몇 개 언어를 사용합니까?”
한국어를 주로 쓴다고 답하자, 그는 잠비아는 부족별 방언까지 포함해 70여 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해서 자국민끼리도 소통이 어렵다고 말해주었다. 여기에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무시한 채 지도 위에 인위적으로 그어버린 국경의 상흔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어 놓은 자의적인 경계가 삶의 소통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는지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짧은 그와 만남에서 절감한 순간이었다.
굉음 속에서 만난 경외감
드디어 잠비아 측 빅토리아 폭포 산책로에 들어섰다. 진입과 동시에 귀가 멍해지는 굉음에 깜짝 놀랐다. 옆 동료의 목소리조차 묻혀버리는 소리의 폭포 속에서 왜 여기를 ‘천둥’이라 불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의를 갖춰 입었음에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물보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방이 사나운 물안개로 가득 차 시야가 가려지자, 비로소 ‘연기’라는 비유의 의미도 실감할 수 있었다.“와!”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선명한 반원형 무지개가 피어나더니, 이내 거대한 쌍무지개로 피어올랐다. 거친 자연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마음껏 과시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였다. 카메라가 물속에 빠뜨린 것처럼 흠뻑 젖어 들었지만, 이 찰나의 경이로움을 담아내기 위해 셔터를 연속적으로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나운 울부짖음에 묘한 해방감을 맛보다
짐바브웨 측 폭포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행을 놓쳐 본의 아니게 홀로 관람 코스에 들어섰다. 혼자만의 여정은 오히려 자연과의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코스를 따라 이동하자 잠비아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물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굉음소리는 여전하고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물보라, 오른편으로는 그 물보라 덕분에 형성된 울창한 열대우림 숲속 오솔길이 펼쳐졌다. 홀로 걷는 숲길에서 언뜻 두려움이 스쳤으나, 숲속에서 만난 사슴 몇 마리가 친근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코스를 지나오다가 갑자기 폭포의 소리가 단순한 자연의 울림이 아닌 사나운 울부짖음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방인에 불과한 여행자였지만, 거센 물보라에 옷이 흠뻑 적셔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거대한 물줄기와 굉음 앞에서 나의 존재는 한없이 작아졌고, 저절로 숙연해졌다. 거대 자연 앞에서 느끼는 작아짐은 무력감보다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어렵겠지만 그냥 내려 놓아보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상공과 절벽에서 입체적 시선을 완성하다
온몸으로 맞았던 지상의 경외감을 넘어, 상공에서는 어떻게 다가올지 호기심이 생겨서 헬리콥터 투어에 올랐다.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은 또 다른 차원의 전율이 밀려왔다. 평평한 아프리카 대평원 사이로 깊게 팬 지그재그 형태의 협곡 구조가 또렷이 들어왔다. 지상에서는 그저 거대한 물벽으로 보이던 폭포가, 실상은 대지의 거대한 지각변동의 결과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깊은 협곡 아래로 강물이 떨어지고, 상공으로 솟구친 물안개가 태양 빛을 받아 그려진 거대한 반원형 무지개도 보여 주었다.절벽을 가까이 체감하고자 짚라인에도 도전했다. 와이어에 몸을 맡기고 출발선에 서자 까마득한 절벽과 잠베지강의 거친 물살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구호와 함께 허공으로 몸을 내던진 순간, 내 몸이 곤두박질쳤다. 외줄 하나에 의지해 회전하며 360도로 펼쳐진 절벽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도파민과 함께 짜릿한 전율이 몰려왔다.
숭고미의 발견 : 시선의 높이가 만드는 삶의 높이
빅토리아 폭포 여정은 지상과 상공, 그리고 허공이라는 다각도의 시선을 통해 대자연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영겁의 세월을 견뎌온 거대 자연 앞에서 마침내 온전한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일상의 잡념과 고민이 거대한 물보라 속에서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집착하기보다는 내려놓으라 하고 폭포와 굳은 약속도 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그의 저서 《탁월한 사유의 시선》에서 “시선의 높이가 생각의 높이이고, 생각의 높이가 삶의 높이”라고 말했다. 지상, 상공 그리고 허공에서 본 입체적인 시선의 경험은 나의 사유를 확장하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끌어올려 주었다. 대자연이 선물한 이 시선은, 앞으로 마주할 삶의 풍랑 속에서도 욕심을 버리고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따라갈 수 있는 정신적 자산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