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다옥의 티 페어링이 진행되는 내부 공간. ⓒ정소람 기자
회수다옥의 티 페어링이 진행되는 내부 공간. ⓒ정소람 기자
10일 찾은 서울 성산동 서보아트스페이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도심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윽한 찻향이 온몸을 감쌌다. 20대 젊은 층부터 나이지긋한 어르신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차를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열린 행사는 차문화 플랫폼 예평과 서보미술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한 <가을의 향, 세계의차: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박서보 화백의 예술적 헤리티지가 남은 공간에 차와 관련한 20여개 국내외 업체가 참여해 가을의 차 향을 뽐냈다. 여러 향과 맛의 차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즈넉한 전통 다구와 차 관련 굿즈가 다양하게 전시돼 오픈 첫날부터 차 마니아들의 방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차(茶) 페어링으로 즐기는 제주의 향

행사장에서는 다양한 모양과 재료로 만든 다구도 체험할 수 있다.  ⓒ정소람 기자
행사장에서는 다양한 모양과 재료로 만든 다구도 체험할 수 있다. ⓒ정소람 기자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 제주 프리미엄 티하우스 '회수다옥'의 티 페어링 다이닝 프로그램이었다. 서경애 대표가 직접 이끄는 한 시간 동안의 티 오마카세(맡김차림)는 제주의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티 푸드와 제주산 차를 페어링해 오롯이 제주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는 실제 제주 회수다옥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한라산 중턱, 360개 오름 사이에는 감귤밭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유기농 차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10월이 되면 커다란 차 꽃이 피어나는데, 그 꽃을 따라가는 차밭 산책은 또 다른 감동이죠."
오메기떡, 다과와 함께 나온 덖음차. ⓒ정소람 기자
오메기떡, 다과와 함께 나온 덖음차. ⓒ정소람 기자
서 대표의 친근하고 깊이 있는 설명과 함께 본격적인 테이스팅이 시작됐다. 테이블 위에는 제주의 밭작물로 만들어진 향긋한 차가 차례로 올려졌다. 미지근한 무화과 차와 제주 푸른콩으로 만든 두유를 시작으로, 녹차와 제주 귤즙 양갱·돌 모양 쿠키, 야생쑥 다과와 제주산 홍차, 호지차와 오메기떡 등이 함께 테이블에 올랐다. 다기 역시 국내 작가들이 현무암, 한라산 등 제주의 상징을 본떠 만든 작품들로, 눈으로 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제주의 식재료로 만든 회수다옥의 다과들. ⓒ정소람 기자
제주의 식재료로 만든 회수다옥의 다과들. ⓒ정소람 기자
티 페어링을 즐기며 다양한 차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서 대표는 "커피가 인기를 끌며 재고로 쌓인 녹차를 처리하기 위해 센 불에 로스팅해 만든 것이 호지차의 시작"이라며 "역시 불의 기운을 강하게 받은 옹기 잔에 마시면 떫은 맛이 흡착돼 구수하고 투명한 맛이 난다"고 소개했다. 이 외에도 축농증 치료제 처럼 쓰이던 목련(신경화)차, 임금님의 간식이던 유자단지 등 다양한 제주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라이프스타일이 된 티타임

다양한 차를 맛보고 있는 관람객들. ⓒ정소람 기자
다양한 차를 맛보고 있는 관람객들. ⓒ정소람 기자
행사장 곳곳에서 여러 브랜드의 차를 비교해 보며 마시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다양한 찻잎의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고, 각 업체마다 즉석에서 찻잎을 우려 따뜻한 차를 내 준다. 설아다원 관계자는 "1997년부터 해남에서 대를 이어 차를 만들고 있다"며 "직접 다원을 방문하면 차밭 산책과 차담 등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남 보성 소재의 보성운해다원 관계자도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차를 즐기는 젊은 인구가 크게 늘었다"며 "제조자마다 원하는 향을 내기 위해 진행하는 공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차여도 맛이 다르다는 점이 차의 매력 중 하나"라고 했다.

한국 보다 차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해 온 나라의 차도 경험할 수 있다. 글로벌 브랜드존에서는 대만(서요량·진품원), 중국(품품향·도화)의 차 부스도 마련됐다. 중국 프리미엄티 전문 업체인 동각에선 50g 당 10만원에 달하는 2025 마두암 육계도 맛볼 수 있었다. 동각 관계자는 "중국에선 1000년이 넘은 고수차가 많은데, 깊고 깔끔한 향이 일품"이라며 "고급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중국의 유서 깊은 차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보성운해다원의 부스. ⓒ정소람 기자
보성운해다원의 부스. ⓒ정소람 기자
이번 전시는 13일까지 하루 3회씩 나뉘어 총 12회 운영된다. 회차별 수용 인원은 500명으로 제한되며, 사전 입장권과 회수다옥 다이닝 프로그램은 예평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회차별 신청 인원이 조기에 마감될 수 있다.

권하람 예평 대표는 "차문화는 차를 마시는 순간을 넘어 차 재배에서부터 예술과 휴식에 이르는 전 과정"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차문화의 전 과정을 함께 교류하고, 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평은 이번 행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이어가는 한편, 티와 각국의 다이닝을 결합한 페어링 행사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