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강물은 끊임없이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아니, 밀어내야 한다. 멈추면 고이고, 금세 썩기 마련이니 그 순간부터 강이라 부를 수 없어서다. 사람 사는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대가 앞선 세대를 대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젊음을 혁신에, 나이 듦을 쇠퇴와 퇴장의 언어로 연결 짓곤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표. ‘그럼 밀려난 앞물결은 어디로 갔나.’

16일 개봉하는 영화 ‘인턴’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왜 지금 앞물결의 행방을 묻는 걸까. 바실리 칸딘스키의 글을 빌리면 ‘모든 예술은 시대의 자식’이다. 이 이야기가 스크린 속에서만 유효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데이터처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고령층 취업자가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제 더는 환갑을 전후한 퇴직이 사회생활의 마침표가 아니게 됐다. 사회초년생의 전유물인 ‘인턴십’ 앞에 ‘실버’를 붙인 노년 일자리 제도를 나라에서 권하고, 그걸 시도하는 기업의 모습이 생경하지만은 않다. 순리를 거스른 앞물결의 역류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다. 나아가는 뒷물결도, 밀려나는 앞물결도 한 번쯤 ‘이 영화 보러 가볼까?’ 생각이 날 법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할리우드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인턴’은 제목부터 낯설지 않다. 동명의 할리우드 원작을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2015년 개봉한 낸시 마이어스의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 앤 해서웨이를 주연 삼아 국내에서 361만명의 쏠쏠한 흥행 기록을 썼다. 11년 만에 ‘한국판’으로 탄생한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충무로를 대표 배우 최민식과 신예 한소희에 그 자리를 맡겼다.

줄거리의 큰 뼈대는 그대로다. 은퇴 후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60대 남성 기호(최민식) 30대 초반의 젊은 최고경영자(CEO) 선우(한소희)가 이끄는 패션기업 우투투에 ‘시니어 인턴’으로 출근한다. 한쪽은 모든 게 빠른 세상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없는 청년, 다른 한쪽은 속도보단 방향이 우선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노인이다. 서로의 시간 흐름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다.

영화가 이를 은유하는 방식은 꽤 탁월하다. 기호는 출판사에서 37년간 일하며 전국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번 만들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산천과 길을 종이 위에 새기는 일이다.

반면 선우는 계절마다 유행이 바뀌고, 어제의 신상품이 오늘이면 구상품이 되는 패션기업을 이끈다. 두 사람의 커리어 간극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 일련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옥이 과거 기호(최민식)가 일하던 출판사였다가, 지금은 선우(한소희)의 회사 우투투의 본거지가 됐다는 점은 그래서 절묘하다.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문제는 그럴듯하게 던진 질문에 걸맞지 않은 빈약한 해답이다. 기호가 젊은 인턴 동기들에게 ‘감다뒤’(유행에 뒤쳐짐)나 ‘영크크’(젊고 감각적인) 같은 신조어를 배우는 정도로 세대 간 간극을 가볍게 봉합해 버린다.

앞서 개봉 전 김 감독이 “직장 내 갈등의 봉합과 극복 과정을 한국적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던 것을 곱씹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직장인들의 세대 차이는 유행어를 아는지의 문제보다 더욱 깊기 때문이다. “부장님 감다살(유행에 민감한)”을 외치는 정도로 한국 사회가 당면한 세대 갈등과 노년 일자리 문제가 풀릴 만큼 단순했다면, 애초에 국가적 고민거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버 인턴 기호가 쓸모를 증명하는 방식도 다소 아쉽다.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새로운 조직에서 다른 형태의 경쟁력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기대하지만, 좀처럼 그곳까지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인재’ 기호의 역할은 운전대를 대신 잡아주며 시작해, 선우의 고민을 아빠처럼 들어주는 데서 끝난다. 경륜의 가치보다는 좋은 사람의 미덕에 가깝다.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 지점에서 문제가 하나 더 생긴다. 어른인 기호의 모습이 지나치게 완벽하다. 여간해선 화내지 않고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으며 젊음의 무례도 넉넉히 품는다. 노인과 철인(哲人)은 동의어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고, 시행착오도 겪는다.

인턴으로 입사시켜 놓고 나이 들었다고 짐짝 취급하는 ‘사수 녀석(?)’이 기호는 괘씸하지 않았을까. 영화는 기호의 속내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차라리 최민식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최익현(범죄와의 전쟁)씨가 노년 인턴으로 들어왔으면 보다 속이 시원했을지 상상해보게 되는 이유다. “너희 사장 남천동 살제? 내가 인마, 그 밑에서 인턴도 하고 다 했어!”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선 이런 식의 패러디가 유행이다.

서사적 깊이의 아쉬움 속 위안거리는 최민식의 명불허전 연기다. 오대수(올드보이)·백선생(친절한 금자씨)·장경철(악마를 보았다)·최익현처럼 그의 말마따나 “길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상의” 아저씨 이미지를 말끔히 벗었다.

선우를 포함해 유진(박예니)·민아(류혜영)·주성(김요한)·백루다(한지은) 등 그를 받쳐주는 ‘영크크’들의 연기도 웃음을 자아낸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