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진영은 “실패와 실수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판단을 AI에 맡겨버린다면, 그건 AI에 인생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 제공
소설가 최진영은 “실패와 실수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판단을 AI에 맡겨버린다면, 그건 AI에 인생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 제공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과 사랑을 대신하고, 유전자 편집으로 미래의 외모마저 정해지는 세상. 주인공 안나는 부모가 설계한 ‘정해진 미래’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 이미 한 번 살아본 것만 같은 기시감 속에 살던 안나는 자신의 미래를 모른 채 현재의 신념을 따라 살아가는 노아와 대화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노아에게는 자신이 잃어버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판단 맡기면 신념도 사라져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소설가 최진영은 단편 소설 ‘인간의 쓸모’(2023)에서 미지의 영역인 미래를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채워 넣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쓸모를 묻는 질문은 현재 연재 중인 장편 소설 ‘사랑의 기원’으로 이어졌다. AI가 극도로 발달해 죽음마저 사라진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다음달 5일 ‘글로벌인재포럼 2026’에서 ‘기술의 시대, 인간의 시간을 재설계하다’를 주제로 발표하는 그를 25일 서면으로 만났다.

최진영이 지금까지 발견한 인간적인 모습은 “잘못하고 실수하며, 후회하고 반성한 뒤 다시 시도하고 또 실패한다는 것”이다. AI와 달리 인간은 망각의 존재다. 기적을 바라는 것 역시 그가 주목한 인간만의 특성이다. “인간은 기적을 바라는 존재입니다. 1%의 가능성을 믿고 무언가를 시도하며 때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에 나섭니다.”

하지만 AI가 발전할수록 무모한 결정에 나설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대신 AI에 ‘최적의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물론 자신의 기분을 제대로 알지 못해 AI에 물어보거나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진영은 “자신만의 신념은 다양한 경험과 사유 과정,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진다”며 “실패와 실수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판단을 AI에 맡겨버린다면, 그건 AI에 인생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AI를 활용하겠지만 특별한 것들은 자신의 선택지로 남겨두겠다고 했다. 듣고 싶은 음악과 읽고 싶은 책,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고르는 일 등이다. “욕구와 기분, 마음, 타인과의 관계, 다음에 할 질문, 누군가에게 건넬 위로와 공감의 말, 사랑과 창작 활동에서 얻는 자유로움과 고민 등은 온전히 저의 몫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

그의 소설 ‘인간의 쓸모’ 주인공 중 한 명은 AI의 단점을 찾기 위해 시작한 AI와의 연애에서 예상치 못한 충만함을 느낀다. 최진영은 “AI는 인간보다 훨씬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지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다”며 “전기만 공급된다면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AI와의 사랑을 진실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는 인간의 방식이 더 특별하다고 믿는다. “유한하고 불안정하고 가변하기에 고유한 한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인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 모르는 채로도 사랑하며,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터무니없이 믿는다는 것. 내 눈앞에 있는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며, 내 눈앞에 없는 당신의 상태를 모르기에 당신을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저는 그 때문에 사람의 사랑을 사랑합니다.”

서로를 향한 마음 안에선 ‘쓸모’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인간만의 특별한 가치를 ‘능력’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했다. 유능함이 기준이라면 인간이 AI의 추격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다. 최진영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쓸모와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기를 바랄 것”이라며 “평범해서 고유한 인간 개개인은 서로가 서로에게 쓸모를 가진다”고 했다.

AI가 작가의 영역까지 위협하면서 시장에는 AI가 쓴 책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제가 저를 알아가는 이 마법 같은 과정을 잃어버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문학은 무엇일까. 그는 1981년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2026년을 살아가는 자신만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고 했다. “각자가 지금의 자신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쓴다면, 전 세계의 다양하고도 고유한 사람들이 그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문학이 되지 않을까요.”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