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산성 혁명 실현되려면 적절한 제도·인센티브 필수"
“미국 전체 일자리의 약 47%가 자동화될 위험에 처해 있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사진)는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인 2013년 동료 마이클 오즈번 교수와 함께 ‘고용의 미래: 일자리는 자동화에 얼마나 민감한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내 702개 직업의 자동화 위험도를 계량적으로 분석한 결과였다. 노동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한 결론에 학계와 산업계는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최근 생성형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던진 질문의 무게도 커졌다. 프레이 교수는 다음달 4일 ‘글로벌인재포럼 2026’에서 ‘고용 대전환: AI로 바뀌는 일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다.

프레이 교수는 자신을 단순한 ‘노동 종말론자’로 분류하는 데 거리를 둔다. 최근 10여 년 전 자신의 예측을 다시 검토한 그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 여전히 구조적 병목이 남아 있다”고 결론 내렸다. 창의성과 비정형 육체노동이 필요한 직업은 상대적으로 자동화로부터 안전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콘텐츠 창작 등의 분야에서는 AI가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이 심해지고 임금 하방 압력을 가해 노동자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레이 교수는 “기술의 영향은 기술 자체보다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 <테크놀로지의 덫>(2019)은 과거 산업혁명 초기 역사를 조명한다. 당시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은 올라갔으나 노동자 소득은 정체했고, 늘어난 부는 대부분 자본가에게 돌아갔다는 분석이다. 최근 발간된 책 <진보는 어떻게 끝나는가>(2025)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경제·기술적 진보는 당연히 계속된다’는 통념에 도전한다. 프레이 교수는 중국 송나라와 네덜란드 공화국, 빅토리아 시대 영국, 소비에트 연합 등 1000년에 걸친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해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은 기술 정체 상태가 표준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는 생성형 AI 시대에도 적절한 제도와 인센티브가 설계되지 않으면 ‘생산성 혁명’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가령 학계에선 AI가 번역과 연구 초안 등을 대신 해주며 논문 작성에 드는 노력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논문의 양을 중시하는 평가체계가 유지되면서 AI로 양산한 질 낮은 논문만 범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프레이 교수는 “AI의 생산성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제도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진화에 맞춰 제도가 적응하고 새로운 시도를 촉진할 여건을 갖추지 못하면 오늘날의 AI 열풍 역시 번영이 아니라 정체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경고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