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레이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총장은 “대학은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블스피커스뷰로 제공
라파엘 레이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총장은 “대학은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블스피커스뷰로 제공
인공지능(AI)이 대학 캠퍼스를 뒤흔들고 있다. 강의와 평가, 연구 등 대학의 역할 전반이 AI의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대학 졸업장을 땄다면 이미 실패자’라는 농담마저 나온다.

라파엘 레이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총장은 AI가 세상을 뒤흔들기 전인 2012년부터 기술을 활용한 캠퍼스 혁신에 나서며 그 명암을 경험했다. 세계 각지의 학습자가 MIT의 강의와 교육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한 교육과정 ‘MITx’를 통해서다. 누구나 전문 지식과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고 이를 손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MITx는 AI 시대 대학 교육의 가능성과 과제를 미리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캠퍼스는 연결을 배우는 곳

MITx 출범을 이끈 레이프 명예총장은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교류와 격려, 규율이 없으면 학습자들이 ‘학습할 이유’를 잃고 만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달 4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서울에서 개막하는 ‘글로벌인재포럼 2026’에서 김성근 포스텍 총장과 ‘인공지능 시대,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특별대담을 한다.

그는 AI 시대 캠퍼스가 마주한 가장 큰 도전은 지식이 아니라 ‘연결’에 있다고 진단했다. 레이프 명예총장은 “교수진과 교직원, 학생이 참여한 MIT 위원회가 최근 교육·학습·연구 훈련에서 AI 활용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며 “가장 우려스러운 결과 중 하나는 AI가 캠퍼스 문화를 덜 사회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교수 면담 시간에 찾아오는 학생이 줄고 온라인 토론 참여가 감소했으며, 대면 스터디 그룹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AI 시대 대학의 존재 의미는 학생 간, 학생과 교수 간, 대학과 사회 간 상호작용에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레이프 명예총장은 “세상은 학생들이 AI를 사용하는 단계를 넘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우길 요구한다”며 “자신과 다른 배경을 지녔거나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과 협력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적·도덕적·사회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젊은이에게 이런 경험을 제공하는 곳은 기숙형 대학 생활”이라며 공동체 생활을 통한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총장 재임 시절 매년 신입생과 면담하며 ‘MIT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 무엇인지’ 물으면 거의 모든 학생이 ‘다른 학생들’이라고 답하며 ‘똑똑함에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있는 줄 몰랐다’고 얘기했다”며 “AI하고만 상호작용해서는 지혜와 관용을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을 불문하고 AI를 다른 학문과 연결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이프 명예총장은 “AI가 물리학·생물학·화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인간보다 훨씬 폭넓게 연결할 수 있는 시대”라며 “대학이 특정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지, 아니면 여기에 더해 혹은 그 대신 폭넓은 교육을 제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컴퓨팅 이중언어’ 가능해야

그는 “대학은 컴퓨팅 이중언어 구사자를 길러내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컴퓨팅 이중언어 구사자는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듯 기술 활용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갖춘 인재를 뜻한다. 레이프 명예총장은 “2022년 말 챗GPT가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 미국에서 신규 창업이 크게 늘었다”며 “AI는 일부 사업의 창업 비용을 낮춰 기업가정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시대에 대학에서는 물론 어린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는 ‘AI 윤리’를 꼽았다. 그는 “학생에게 AI를 가르칠 때는 과제 수행에 활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AI를 능숙하게 다루고 통제하며 더 큰 공익을 위해 윤리적으로 사용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시민의식과 윤리, 도덕적 판단력을 인문학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같은 음성 기반 AI 비서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기계에 무례하게 말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며 “물론 기계가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타인을 존중하며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