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車, 두려워할 게 가격만일까
미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지프는 한때 중국 중산층에 성공과 자유를 상징했다. 하지만 2022년 중국 내에서 지프를 생산하던 스텔란티스와 광저우자동차(GAC)의 합작사가 파산하며 문을 닫았다. 글로벌 브랜드의 중국 사업 실패를 상징한 지프는 4년 만에 다시 중국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GAC가 아니라 둥펑자동차가 스텔란티스의 파트너다. 주목할 점은 지프에 들어갈 기술이다.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모멘타와 손잡고 지프에 중국산 지능형 주행 기술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너도나도 中과 미래차 개발

지프뿐만이 아니다. 판매 부진에 빠진 이탈리아 고급차 브랜드 마세라티도 중국 기술 도입을 검토 중이다. 아직 계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지만 화웨이의 전기·전자장치와 지능형 주행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폭스바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중국 전기차업체 샤오펑과 중국 시장용 전자·전기 아키텍처를 공동 개발했다. 독일 본사에서 기술을 가져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 기술을 사업의 핵심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중국에서 자율주행과 차량용 소프트웨어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산업은 외국 기업의 기술을 배우며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외국 완성차업체의 독자 진출을 제한하고 현지 기업과 합작하도록 했다. 거대한 시장을 내주는 대신 기술과 생산 관리 노하우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베이징과 상하이에 폭스바겐 산타나와 GM 뷰익이 넘쳐났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자동차산업의 기술 지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서구의 기술을 배우던 중국 기업이 이제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핵심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경쟁 기준이 바뀐 결과다.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엔진과 변속기, 섀시 등 기계공학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했다. 전기차 시대에는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차량용 인공지능(AI), 전자·전기 아키텍처의 중요성이 커졌다. 엔진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못지않게 자동차의 두뇌를 얼마나 똑똑하게 설계하고 진화시키느냐가 중요해졌다.

저가 공세보다 무서운 기술 생태계

중국은 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새로운 모델과 기능이 쏟아졌다. 완성차업체 주변에는 배터리와 반도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 화웨이와 모멘타가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기술을 공급하고 샤오펑이 폭스바겐의 개발 파트너가 되는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지금까지 중국 자동차에 대한 경계는 저렴한 가격과 빠른 수출 증가에 집중됐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산업의 더 큰 힘은 기술 생태계에 있다. 글로벌 브랜드가 중국 기술을 하나씩 더 채택할수록 중국 업체는 더 많은 차량과 도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얻는다.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기술을 고도화하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밑천이 된다. 기술 격차가 계속 커지는 구조다.

중국차의 저가 물량 공세에만 주목한다면 더 큰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세계 자동차업체가 중국 기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차의 가격표만 들여다보는 사이 세계 자동차산업의 두뇌에선 중국 기술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