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백악관의 이상한 '가짜뉴스' 골라내기
백악관 기자실은 전쟁터다. 49개의 좌석은 주인이 정해져 있다. 맨 앞줄에는 CNN과 폭스뉴스 등 주요 언론사가 배정되고 뒷줄로 갈수록 매체의 중량감이 줄어든다. 기자도 처음 백악관 기자실에 왔을 때 멋모르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리 주인이 눈치를 주고서야 ‘아차’ 하면서 일어났다. 의자 아래에 매체명이 써 있는 줄을 몰랐다.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매체들은 통로에 서야 한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후 좋은 점은 백악관 기자실 출입이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친(親)정부 성향 매체, 특히 팟캐스트 진행자와 인플루언서 등을 받아들이기 위해 문턱을 낮췄다.

정부 비판 언론에 취재 제한

우군을 늘리려고 출입증을 많이 발급하다 보니 안 그래도 비좁은 기자실 통로는 터져나갈 지경이 됐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도 땀이 뻘뻘 흐르고 옆 사람의 체취가 느껴진다. 서울의 ‘지옥철’과 비슷한 분위기다. 브리핑에서 질문 기회를 얻으려고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도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맨 앞줄이 아니고서는 질문할 기회가 좀체 없다. 발판 위에 올라선 다른 기자들을 보고 ‘저거다’ 싶어 아마존에서 10달러짜리 발판을 주문했는데, “사진기자들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설명에 반품했다.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자 캐럴라인 레빗 전 대변인이 출입증을 정리하자고 한 모양이다. 지난여름부터 백악관은 출입증 갱신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상당수 매체가 이달 초를 기점으로 출입 권한을 상실했다.

출입 빈도에 따라 출입증 효력을 정지하는 일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문제는 백악관에 매일 드나들며 취재하던 CNN과 폴리티코, MSNOW 등 유력 매체의 출입증도 효력을 잃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트루스소셜에 “이들의 끊임없는 가짜뉴스 보도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언론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 위반이겠으나 당분간은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난해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바꿔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AP통신의 취재를 제한한 것도 아직까지 법정 공방 중이다. 백악관 기자실엔 지금도 ‘우리는 AP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미국이 주장해온 가치에 역행

트럼프 정부의 언론관은 독특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늘 언론의 주목을 바라지만 언론과의 접촉은 선호하지 않는다. 매주 두 차례 정기 브리핑을 하던 국무부는 작년 8월 이후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필요할 때만 비정기 기자회견을 연다. 전쟁부(국방부)는 출입기자들에게 비인가 정보를 보도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으려다가 보이콧을 당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정기적인 대정부 소통 창구가 백악관 브리핑이다.

어느 정부, 어느 상황에서나 언론이 정부와 편한 관계이기는 어렵다. 조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백악관 대변인과 폭스뉴스 기자는 늘 다퉜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만 골라 자의적으로 출입을 제한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미국이 지금껏 설파해 온 가치에 반하는 일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을 ‘좋은 저널리즘’이라고 장려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디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