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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도 눈감고 빠져든 '아베 마리아'…손지혜가 완성한 '오텔로'의 비극
부산콘서트홀서 정명훈 지휘 콘서트 오페라
72세 테너 그레고리 쿤데도 탄탄한 호흡으로 타이틀롤 소화
APO 현악진, 사랑의 서정부터 살인의 냉기까지 표현
계단 무대에 펼쳐진 의심과 모략…10분간 이어진 기립 박수
72세 테너 그레고리 쿤데도 탄탄한 호흡으로 타이틀롤 소화
APO 현악진, 사랑의 서정부터 살인의 냉기까지 표현
계단 무대에 펼쳐진 의심과 모략…10분간 이어진 기립 박수
데스데모나의 기도가 흐르자 지휘자 정명훈도 눈을 감았다. 소프라노 손지혜가 부르는 '아베 마리아'에 깊이 잠긴 듯 그의 손이 음악과 함께 움직였다. 남편의 의심 앞에서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는 여인의 마지막 기도. 부산콘서트홀에서 만난 베르디의 '오텔로'는 이 장면에서 가장 깊은 비극을 선사했다.
지난 10~11일 부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콘서트오페라 '오텔로'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인물의 내면을 그려낸 공연이었다. 정명훈이 지휘하고 표현진이 연출, 김현정이 무대디자인을 맡았다. APO(아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클래식부산합창단, 노이오페라코러스, 해운대구립소년소녀합창단이 참여했다.
합창석에 앉은 합창단을 극의 일부로 활용한 점도 참신했다. 표현진은 여러 장면에서 합창단에게 연기를 부여해 합창석까지 극적 공간으로 확장했다. 계단 위 출연진의 동선과 합창단의 연기가 어우러지며 콘서트홀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했다.
이날 가창과 극적 표현이 가장 빈틈 없었던 주역은 데스데모나 역의 소프라노 손지혜였다. 특히 4막 '버드나무의 노래'와 '아베 마리아'는 공연 전체의 무게중심을 그의 목소리로 옮겨놓았다. 죽음을 앞둔 인물의 불안과 슬픔이 노래 안에 응축됐다. 앞선 장면들에서 쌓인 의심과 격정은 이 대목에 이르러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은 "라 스칼라의 차기 음악감독인 정명훈이 손지혜를 그 무대에 데려가는 것 아니냐"며 기대를 나타냈다. 이날 손지혜가 남긴 인상을 짐작하게 하는 반응이었다.
벨칸토 레퍼토리로 명성을 쌓은 쿤데는 이후 베르디의 극적인 배역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2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텔로를 처음 맡은 뒤 자신의 대표 배역으로 만들었다. 로시니와 베르디의 '오텔로'를 같은 시즌에 소화한 이력도 있다. 정명훈과는 라 페니체와 베네치아 두칼레궁 야외 무대 등에서 이 작품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번에도 작품에 대한 두 음악가의 오랜 경험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이어졌다.
그런 접근은 이 작품을 확증편향의 비극으로 읽게 했다. 이아고는 실제 일어난 일 사이에 의심을 끼워 넣고, 오텔로가 스스로 잘못된 결론에 이르도록 유도한다. 루치치의 부드러운 음색은 그 계략에 설득력을 더했다. 오텔로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질수록 이아고의 존재는 더욱 무서워졌다.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성악진의 호흡이 끝까지 고르게 맞아떨어지 못했다. 3막 후반 대규모 중창에서 아쉬움이 드러났다. 오텔로와 이아고가 자리한 쪽의 반대편에서 로데리고 역의 테너 김재일, 로도비코 역의 베이스 김철준, 카시오 역의 테너 황준호, 에밀리아 역의 사비나 킴이 함께 부르는 대목은 매끄럽지 못했다. 네 사람의 앙상블이 충분히 맞물리지 않으면서 극에 대한 몰입이 잠시 흐트러졌다.
첼로의 심준호는 솔로가 등장할 때마다 섬세한 표현으로 음악의 결을 살렸다. 전반부에서 귀를 붙든 하피스트 윤혜순의 연주도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풍성하게 했다. 개별 연주자의 존재감이 극의 흐름 안에서 빛났다.
현악진의 역량이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4막이었다. 바이올린들이 데스데모나의 감정을 그려낸 데 이어, 더블베이스가 오텔로의 섬뜩한 등장을 알렸다. 이창형이 이끈 더블베이스 파트는 풍부한 배음을 실은 저음으로 공기를 바꿨다. 그 울림에는 뼛속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냉기가 있었다. 손지혜의 기도가 전한 슬픔과 저음 현악기가 예고한 폭력이 맞닿으며 비극은 완성됐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정명훈이 관객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날 것을 권했고,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출연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커튼콜은 10분 동안 이어졌다.
부산시는 내년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위한 라 스칼라 초청 공연의 추진 여부를 10월 중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이날 공연장을 찾지 않았다.
부산=조동균 기자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