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초구 슈타인웨이홀에서 리허설중인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니니 / ⓒATEMPO
13일 서초구 슈타인웨이홀에서 리허설중인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니니 / ⓒATEMPO
"여기서 정적이 필요해서 호흡을 조금 더 깊게 쉬어야 할 것 같아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61)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지니(41)가 슈만의 연가곡 '리더크라이스' 악보를 앞에 두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13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홀에서 열린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오픈 리허설. 서로를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던 두 사람에게 연습은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었다. 지오지니가 웃으며 답했다. "그가 조금 느리게 연주하자고 하면 제가 '좋아요'라고 하기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하기도 하죠. 저는 주로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부드러운 호흡 뒤에는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는 '협상'의 과정이 있었다. 지오지니는 "이렇게 해야 한다보다는 '이렇게 연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며 "저 역시 성악가에게 제 생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스트리지가 자신의 연주관을 덧붙였다. "저는 음악을 연주를 위한 레시피에 비유하곤 해요.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형태를 정확히 구현하기보다 좋은 연주를 만들어 가기 위한 것이죠."
2024년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서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공연한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랄프 고토니 / ⓒ서울국제음악제
2024년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서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공연한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랄프 고토니 / ⓒ서울국제음악제
두 사람은 15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 오른다. 2024년 이 음악제에서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려줬던 보스트리지는 이번에는 지오지니와 베토벤·슈만의 연가곡으로 관객을 만난다.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슈만의 작품번호 24 <리더크라이스>와 <시인의 사랑>을 선보인다. 각각 6곡, 9곡, 16곡으로 구성된 세 연가곡집이다. 한 무대에서 총 31곡에 호흡을 맞추며 사랑의 그리움과 좌절, 그 이면의 감정을 펼친다.

긴 프로그램을 이끄는 힘에 대해 보스트리지는 무대에서 샘솟는 '아드레날린'을 꼽았다. 공연 당일에는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하도록 일정을 조절한다고 했다. 지오지니는 작품 자체의 흐름에 주목했다. "연가곡에서는 음악 자체가 에너지의 흐름을 결정해요. 감정이 마지막까지 고조되는 작품도 있고, 중간에 절정에 도달한 뒤 서서히 사라지는 작품도 있죠."

그 흐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보스트리지는 "때로는 작곡가가 적어 놓은 대로 도저히 노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리허설은 그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일뿐, 진정한 연주는 실제 콘서트홀에서 이루어진다."라며 "오랜 협업으로 쌓은 피아니스트와의 신뢰가 새로운 시도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그가 짚은 슈만의 매력은 말과 감정 사이의 모순이다. '시인의 사랑'의 주인공은 사랑의 기억을 지나 질투와 거절, 좌절을 겪는다. 원망하지 않는다고 노래하지만 음악에서는 다른 감정이 흘러나온다. "실제로는 분명 원한을 품고 있죠. 가사는 한 가지를 말하지만 음악과 감정적인 맥락은 전혀 다른 것을 암시해요."

마지막에는 자신의 사랑과 고통을 거대한 관에 담아 바다에 가라앉히려 한다. 보스트리지는 이 이미지에 담긴 공격성에도 주목했다. 아름다운 선율 안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감정을 함께 읽어내는 것이다.
1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과 슈만의 연가곡을 공연하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니니 / ⓒATEMPO
1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과 슈만의 연가곡을 공연하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사스키아 지오니니 / ⓒATEMPO
지오지니 역시 슈만 음악의 모호함에 귀를 기울인다. 두 사람이 함께 낸 음반 '트와일라잇'의 제목을 설명하면서는 슈만의 음악을 황혼에 빗댔다. "낮과 밤이 교차할 때는 방금 보고 들은 것이 실제였는지 상상인지 확신하기 어려워지죠. 그런 모호함이 슈만의 음악 세계와 가까워요."

역사 연구에서 출발한 보스트리지의 이력은 작품을 읽는 방식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게 한다. 그는 공부하는 시간과 노래하는 순간을 구분했다. 그림을 보고 슈베르트 시대 빈의 문화를 읽는 일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준비 과정이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신체적으로도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죠. 기본적으로 지적인 사고 과정과는 달라요."

전업 성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1994년이었다. 그 해 브리튼의 오페라 '한 여름밤의 꿈'에 출연하하기도 했다. 박사 논문을 마친 뒤 방송사에서 일했고, 옥스퍼드에서 연구를 이어가면서 차츰 노래의 비중을 늘렸다. 1995년 전업으로 전환한 뒤 리트, 즉 독일 예술가곡은 활동의 중심이 됐다. 초기 슈베르트 가곡 녹음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자신이 늘 원했던 리사이틀 제안이 이어졌다.

오페라도 즐겼지만 대체로 한 해 한 작품 정도에 참여했다고 한다. 가곡 중심의 활동에는 생활의 선택도 있었다. "오페라 프로덕션은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해요. 리트 리사이틀은 가족생활과도 더 잘 맞았죠."

목소리와 피아노만으로도 가곡은 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낸다. 보스트리지는 노래 속 인물이 곧 자신은 아니라고 했다. "가곡을 부를 때처럼 일상에서도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감정이 극도로 강렬하고 때로는 분노에 차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오래된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는 일은 낯선 감정을 만나는 통로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