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누군가에겐 사치스러울 '한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눈앞의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면 어떨까? 소리는 들리는데 눈앞의 한글이 온통 낯선 암호처럼 다가온다면 말이다. 당장 버스 노선도를 읽는 것부터 은행 업무를 보는 것까지, 일상의 모든 순간이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답답할 테다.

재작년께, 인도네시아 출장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반둥한인회에서는 현지 학교의 빈 교실을 빌려 재외동포 2세들을 위한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꼬마 학생들이 좁은 방마다 모여 앉아 한글책을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귀국 후 수해로 아이들의 책이 모두 젖었다는 소식을 듣고, 각계의 도움을 모아 우리 구에서 제작한 문해교육 책자와 아동 도서를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얼마 뒤, 아이들이 책을 품에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새로 건네받은 책의 책장을 넘기느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서툰 발음으로 자음과 모음을 짚어가는 아이들, 낯선 타국 땅에서 부모의 모국어를 배우던 초롱초롱한 눈빛들. 간절히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기회를 열어줬다는 사실이 벅찬 보람으로 남았다.

이 같은 ‘한글의 힘’은 비단 해외에만 머물지 않는다. 은평구는 매년 문해 한마당인 ‘한평생 좋은 날’을 개최한다. 구청 로비에 시화전이 펼쳐지면 이들이 꾹꾹 눌러쓴 시 한 줄 한 줄에는 삶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한글 옷을 입고 모여든다.

“아들이 중학교 때 응암동으로 이사와 장사를 하며 아들을 가르치며 어언 40년. 옛날 그렇게 부러웠던 교복을 입은 친구들. 76세에 시작한 공부.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 은평구 평생학습관 중학생이다.” (한순남, ‘은평중학생’ 중에서)

한글을 배우는 일은 어르신에게, 그리고 한인 2세에게 삶을 통째로 흔들어 깨우는 위대한 도전이자 때로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숨 쉬듯 당연하게 누리는 한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해답은 바로 이들의 눈물겨운 학구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의 마음을 이어받아, 나는 일상에서 한글이 더 깊이 숨 쉬도록 행정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글자 하나에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은평의 곳곳에 한글의 아름다움을 심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형태를 본떠 ‘은평 사가독서체’를 개발했다. 진관사로 향하는 길에는 ‘한글 길’을 만들어 일대의 간판도 토박이말로 바꾸고 ‘한글 테마공원’도 만드는 중이다. 내년에는 ‘국립한국문학관’도 들어선다. 이렇듯 한글은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모레는 한글날이 제정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뿌리 없이 단단하게 설 수 있는 식물이 어디에 있으며, 글자 없이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은 결국 한글이라는 단단한 토대를 딛고 서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기 쉬운 요즘, 우리가 누리는 한글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