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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내 주식 계좌를 AI에 맡긴다면
김승연 넥스트증권 대표
이 질문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미국 로빈후드는 지난 5월 ‘에이전틱 트레이딩’을 내놓았다. 고객이 고른 외부 AI를 전용 계좌에 연결하면 AI가 계좌를 살피고 전략을 세운 뒤 직접 사고파는 서비스다. 출시 두 달 만에 10만 명 가까운 고객이 계좌를 열었고, 계좌 자산은 1억달러를 넘어섰다. 글과 그림을 만들던 AI가 이제 돈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식 거래의 혁신은 주문을 편리하게 하는 일이었다. 거래는 지점 창구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다시 스마트폰으로 옮겨 왔지만,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늘 투자자다. 에이전틱 트레이딩은 그 버튼까지 AI에 맡긴다.
자동 매매는 전에도 있었지만, 사람이 정한 조건대로 움직였다. 반면 에이전트형 AI는 “기술주 비중을 줄이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기업 중심으로 바꿔 달라”는 말만으로 보유 종목과 실적, 뉴스를 살핀 뒤 주문까지 낼 수 있다. 조사와 판단, 실행이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투자자라면 솔깃하다. AI는 잠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본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특히 부럽다. 문제는 틀렸을 때도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시를 잘못 알아들어도 매매는 그대로 실행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AI의 능력보다 고객의 통제권이었다. 로빈후드는 전용 계좌를 기존 계좌와 분리해 AI가 그 안의 돈만 쓰게 했다.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알림이 오고, 언제든 연결을 끊을 수도 있다. 주문 버튼이 AI에 넘어가도 계좌의 주인은 고객으로 남는다.
이런 구조를 마련하는 것은 증권사의 몫이다. 지금까지 증권사는 사람이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는 데 공들여 왔다. 이제는 AI가 안전하게 주문하고 고객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시스템까지 설계해야 한다. 증권사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화면과 브랜드, 혜택을 보고 골랐지만, AI는 수수료와 환전 비용, 체결 품질, 시스템 안정성을 더 냉정하게 비교할 것이다. 사람은 앱을 보고, AI는 시스템을 본다.
넥스트증권도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모두 활용할 수 있는 API 기반 브로커리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먼저 선보일 오픈API는 시세·계좌 조회부터 주문까지 외부 프로그램과 연동할 수 있는 서비스다. 향후 선보일 MTS 역시 이와 동일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설계된다. AI 에이전트가 투자정보를 분석해 영상 콘텐츠로 제공하고, 실제 거래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하나의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스템이 아무리 편리하고 똑똑해져도, 어디까지 맡길지는 투자자가 정해야 한다. 내 주식 계좌를 AI에 맡긴다면 가장 먼저 수익률 목표부터 입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감당할 수 있는 손실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거래하지 말아야 할 상황을 먼저 정해 두겠다. 무엇을 시킬지보다 무엇을 시키지 않을지가 먼저다.
생각해 보면 투자에서 어려운 것은 주문 버튼을 누르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믿고, 얼마를 감당하고, 어디에서 멈출지를 정하는 일이다. AI가 주문까지 대신해도 이 판단은 여전히 투자자 몫이다. 주문은 AI에 맡길 수 있어도, 원칙까지 맡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