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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우아한' 눈높이
박수영 국민의힘 국회의원
(나를 포함해) 어른들은 흔히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자만심, 심하면 ‘어린 게 뭘 아냐’는 오만한 마음까지 가진다. 단언컨대, 큰 착각이다. 특히 어른들의 가장 큰 실수는 아이들의 눈높이가 어른들과 비슷할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한다.
2024년 완성된 부산 남구 연포초 광폭 스마트 횡단보도가 그랬다.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까운 세금이 낭비되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잘못된 사례를 남길 뻔했다. 지난 2020년 6월, 내가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국쫌만(국회의원 쫌 만납시다)’에 민원이 들어왔다. 연포초등학교 앞에 구름다리(육교)를 설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가 대단지 아파트 바로 앞에 있고 교통량도 많아 아이들 등하굣길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곧바로 현장에 갔다. 난감했다. 구름다리를 놓을 인도폭이 나오지 않았다. 구청도 난색을 보였다. 며칠이고 아침마다 연포초 앞을 찾아갔다. 발걸음이 급한 아이들은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몇몇은 횡단보도 중간부터 도로를 가로질렀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며 길을 건너는 친구도 있었다. 보면 볼수록 아찔했다. 영상까지 찍고 몇 번을 돌려보며 고민했다. 역시 혼을 담으면 답이 나오는 법. 묘안이 떠올랐다. ‘아이를 길에 맞추는 대신 길을 아이에게 맞추면 되지 않을까?’
민원의 시작은 육교였다. 하지만 책가방을 메고 준비물까지 든 채 발길을 재촉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육교는 정답이 아니었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고 시간도 더 걸린다. 어른들은 일찍 일어나라지만, 단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어린 마음을 어찌 타박할 수 있을까. 잠깐이라도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콘텐츠를 보려는 호기심을 또 어찌 탓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봤다. 육교 대신 ‘안전한 등하굣길’에 초점을 맞췄다. 관계기관과 협의해 횡단보도 폭을 35m로 대폭 넓혔다. 전국 최대 수준의 크기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벗어날 걱정이 줄어든다. 스마트폰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한 ‘스마트함’도 더했다. 바닥형 보행 신호등을 설치했다. 정지선 감지 기능을 장착해 보행자가 차도로 넘어가려고 할 때 경고음이 나오게 했다. 운전자 시선을 끄는 LED 유도등을 횡단보도 가장자리에 설치했다. 특히 앱을 깐 학생이 횡단보도 1m 이내에 접근하면 팝업이 뜨고 스마트폰을 잠시 자동 차단하는 기술까지 접목했다. 시원하게 넓어진 횡단보도에 여유와 안전함까지 가득했다.
간혹 아이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청한다. 손편지와 손수 그린 그림을 주기도 한다. 지난 8월 1일 290번째 ‘국쫌만’에선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남구 지키미’라는 문구와 함께 내 얼굴을 그려 선물로 줬다. 그럴 때면 허리를 숙이고 무릎도 꿇는다.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우아한’ 대한민국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