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주포럼 개막을 이틀 앞둔 6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전경. 8일에서 9일까지 2026 세계경주포럼이 열린다. /경상북도 제공
세계경주포럼 개막을 이틀 앞둔 6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전경. 8일에서 9일까지 2026 세계경주포럼이 열린다. /경상북도 제공
천 년 전, 세계의 문물이 모여들던 신라의 왕경 경주.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서 서로 다른 사람과 사상, 종교와 예술이 만나 신비스러운 문화를 꽃피운 이 도시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성장의 다음 시대, 세계를 연결하는 힘은 무엇인가’ 2025년 세계 정상들이 APEC 2025에서 경제와 협력을 논의했다면, 2026년 경주는 그 답을‘문화’에서 찾는다.

오는 8일에서 9일까지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는 ‘2026 세계경주포럼(World Gyeongju Forum)’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경주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관한다. 포럼의 대주제는‘글로벌 전환기, 문화가 이끄는 공동번영·공동 성장’이다. 문화창조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 중심의 가치와 포용적 성장, 국가와 세대를 넘는 국제협력을 문화라는 언어로 풀어내겠다는 의도다.

◇APEC 경주선언서 ‘문화창조산업 경제성장에 기여’ 명시

세계경주포럼 이미지.
세계경주포럼 이미지.
세계경주포럼의 출발점은 2025년 경주다. 지난해 경주에서는 APEC 최초의 ‘문화창조산업 고위급 대화’가 열렸고, 21개 회원 경제 대표들은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을 중심으로 문화창조산업의 미래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채택된 ‘APEC 정상 경주선언’에는 문화창조산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중요 분야라는 내용이 정상 문서에 처음으로 명시됐다. 문화가 관광과 교류의 부수적 영역이 아니라 성장과 일자리, 혁신, 국제협력을 만들어내는 독립적인 글로벌 의제로 올라선 것이다.

APEC은 도시도 바꿔놨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말까지 관광객은 2154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외국인은 56만9000여 명으로 18.3% 늘었다. APEC을 통해 높아진 경주의 국제적 인지도가 실제 관광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경북이 주목하는 것은 ‘한 번의 성공’이 아니다. 이제는 해마다 세계가 문화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경주를 찾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가 세계경제포럼을 통해 세계 경제 담론의 상징적인 도시가 됐듯, 경주는 세계경주포럼의 정례화를 통해 ‘문화 담론의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과거를 ‘연결’하고, 현재를 ‘혁신’해 미래의 ‘번영’으로

세계경주포럼의 가장 큰 특징은 각각의 세션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각 핵심 분야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축은 역사·문화의 ‘연결(Connection)’이다. 문화유산을 박물관 속에 보존하는 과거의 유물로만 바라보지 않고 오늘의 창의성과 산업을 낳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재해석한다. 무형 문화유산의 국제 네트워크와 협력 거버넌스를 통해 과거의 자산을 미래로 연결하는 방안을 찾는다.

두 번째는 디지털·AI의‘혁신(Innovation)’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창작·제작·유통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 기술이 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힘이 될 것인지, 또 다른 격차를 벌릴 것인지 묻는다. 창작자와 산업, 제도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생태계를 논의한다.

세 번째는 문화창조산업·청년의 ‘번영(Prosperity)’이다. 국가를 넘어 이뤄지는 공동제작과 인재 교류, 미래세대의 문화산업 진입 기회를 확대해 한 국가의 성공에 머물지 않는 ‘함께 성장하는 문화산업’을 모색한다. 여기에 경북의 역사 문화자산을 AI·디지털 기술 및 콘텐츠와 결합하는 지역특화 논의를 더해 지역에서 세계로 이어지는‘협력(Cooperation)’의 길을 제시한다.

올해 세계경주포럼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산으로 세계를 연결하고, 기술로 문화를 혁신하며, 청년과 함께 번영하고, 경주에서 세계와 협력한다’다.

과거의 경주가 미래의 경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경북이 가진 역사 문화 자산이 ‘과거-연결’의 토대가 되고, 문화창조산업과 디지털·AI가 ‘현재-혁신’을 이루며, 청년과 국제교류가 ‘미래-번영’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서사를 만든다. 이는 분야별 논의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문화로 연결하는 세계경주포럼의 메시지 프레임이다.

◇1000년 국제도시 경주의 재도약

문화가 세계의 방향을 바꾼 사례는 역사에서 낯설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는 작은 도시였지만 예술과 지식, 기술과 산업이 결합하면서 유럽 문명의 변화를 이끌었다. 오늘날 다보스 역시 인구 규모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매년 어떤 질문을 던지고 누가 모여 답을 찾는가를 통해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

경주는 1000년 전 이미 열린 국제도시였다. 신라는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면서 독창적인 문명을 구축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문화의 힘은 자신의 것을 지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있다”며 “오늘의 세계경주포럼이 천 년 전 경주의 개방성과 창조성을 다시 불러내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북과 경주가 그리는 최종 목표도 여기에 있다. 세계경주포럼을 한 번 열고 끝나는 국제행사가 아니라 세계의 문화 의제가 해마다 축적되는 지식·정책 플랫폼으로 만들고, 그 결과를 ‘경주 아젠다’라는 이름으로 쌓아가겠다는 것이다. 역사 문화유산은 세계와 연결하고, 한글·한복·한식 등 K-컬처의 원형은 AI 시대의 새로운 창조자원으로 확장하며, 청년과 세계의 창작자들이 경주에서 만나 새로운 협력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2025년 경주가 세계 정상들을 맞이한 도시였다면, 2026년 경주는 세계의 생각이 모이는 도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경제의 시대를 지나 기술과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 천년 고도 경주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넘어 세계 문화의 내일을 묻고, 답을 찾아나가는 도시로 향하고 있다. 세계경주포럼은 그 긴 여정의 출발점이다.

경주=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