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지난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올해 축제의 화두는 ‘누구세요?(Who are we?)’. 인공지능(AI)과 비인간 존재가 인간의 자리를 새롭게 묻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문학의 언어로 되짚는 자리였다. 축제 개막 대담에 나선 칠레 출신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46)와 올해 축제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소설가 김연수(56)를 만나 각자의 문학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벵하민 라바투트 "문학은 무의식의 예술…AI가 풀지못할 영역"
“인공지능(AI)은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는지 알아내고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산문 하나를 쓰지는 못합니다. 문학은 AI로부터 안전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단호했다. 지난 11일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열린 아라아트센터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AI가 인간의 창작마저 대체할 것인가’란 질문에 주저 없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올해 축제가 ‘누구세요?’라는 주제 아래 AI 시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 만큼 인터뷰에서도 AI와 인간의 창작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라바투트는 실존 인물과 사건에 허구를 뒤섞어 인간 이성의 한계와 진보의 위험을 탐구해온 작가다. 20세기 천재 존 폰 노이만을 통해 과학과 AI의 역사를 파고든 <매니악> 등이 번역돼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AI에는 작가의 ‘관점’이 없다”

라바투트가 문학을 AI가 쉽게 넘보기 어려운 영역으로 보는 것은 문학이 애초에 예측과 규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은 무의식에서 출발해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입니다. 활화산과 같아서 그 원천이 어디인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죠. 우리는 문학의 지도를 대략 그릴 수 있을 뿐 그 정수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AI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확률적으로 답을 찾는 AI와 달리 예술가는 규칙을 깨고 전에 없던 것을 만들려고 한다. “작가는 클리셰에서 벗어나고 통계적 규범을 깨려고 합니다. 젊은 시절의 밥 딜런을 생각해보세요.”(웃음)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만난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만난 소설가 벵하민 라바투트.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예측 불가능성의 바탕에는 한 인간만의 고유한 ‘관점’이 있다. 작가는 살아온 제한된 경험과 기억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무엇을 쓸지 선택한다. 라바투트는 바로 그 한계가 AI와 인간을 가른다고 봤다. AI는 고유한 관점 없이 ‘다른 사람의 문체와 스타일을 복제해올 뿐’이지만 인간의 불완전함과 한계는 역설적으로 작가의 고유성이 된다. 그래서 그에게 좋은 예술은 흔할 수 없다. 라바투트는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과학 진보 멈춰야…이성 밖 세상 밝히는 게 픽션”

문학에서의 안전지대와 달리 AI가 인간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훨씬 비관적이었다. 특히 AI가 ‘주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AI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도 모릅니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끔찍하고 취약한 측면을 모아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죠.”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과학적 진보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합니다. 우리를 계속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더 많은 힘과 돈을 원하는 인간의 탐욕이며, 이것이 “인류를 멸종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법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라바투트는 블랙홀의 특이점이나 인간의 광기처럼 이성만으로 붙잡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는 픽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픽션은 세상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입니다.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기 위해 사용하죠.”

“완벽한 것은 죽음과 가깝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라바투트에게 한국은 어떻게 보였을까. 예민한 작가답게 그는 짧은 체류 중에도 한국 사회의 독특한 기류를 감지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놀라울 만큼 발전하고 완벽해 보이는 동시에 어딘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사회였다. “사람들이 서로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분노가 들끓고 있는데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문화 강국이 된 한국을 “세계가 경외하는 나라”라고 표현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우려했다. “완벽한 것은 죽음과 가깝습니다. 인간의 결함과 흠집은 용기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은 엉망진창일 수 있는 용기 말입니다.”

현재 그는 1850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디지털 논리’의 역사를 다룬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다. 참과 거짓, 0과 1로 세계를 환원하는 논리가 어떻게 현대인의 삶을 만들었는지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디지털 세계는 우리에게 더 많은 힘을 주는 동시에 삶을 더 빈곤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0과 1로 환원할 수 없는 연속성이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