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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이슬람 흔적 위에 플랑드르·나폴리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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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교차가 빚어낸 스페인의 독특한 미학
문화의 교차가 빚어낸 스페인의 독특한 미학
기독교 국가가 스페인 땅을 되찾은 뒤에도 무슬림 장인은 그대로 남아 궁과 성당을 지었다. 이들은 아랍어로 ‘남는 것을 허락받은 자’라는 뜻의 무데하르라고 불렸다.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은 1364년 기독교 왕 페드로 1세가 무슬림 장인을 불러 지은 건물이다.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1841~1920)가 1868년 그린 ‘세비야 알카사르 예배당에서의 기억’이 이 궁 안의 예배당을 담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 미술의 문법은 자연스럽게 스페인 미술에 녹아들었다.
스페인 미술은 다른 유럽 국가와도 섞였다. 1516년 스페인 왕이 된 카를로스 1세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를 함께 다스렸다. 왕가를 따라 국경을 넘은 화가들은 스페인에서 그림을 그렸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출신 안토니스 모르(1519~1576)는 1549년 브뤼셀에서 스페인 귀족 알바 공작의 초상을 그렸고, 이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가 됐다. 전시에 나오는 정물화 ‘멜론과 조류가 있는 정물’(1630년께)을 그린 미겔 데 프레트도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일대) 출신이다.
17세기 초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가 나폴리에서 활동하며 퍼뜨린 명암법(테네브리즘)도 같은 경로로 스페인에 넘어왔다. 가톨릭이 개신교에 맞서 그림으로 신앙을 다잡던 시대였다. 스페인 화가들도 카라바조에게 배운 어둠을 종교화에 썼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의 ‘성녀 루치아’(1630년께)에서는 세로 1.8m 화면 전체가 캄캄한 가운데 성녀에게만 빛이 떨어진다. 작품을 본 사람들은 성녀를 보며 눈으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