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킨 소로야 ‘자화상’, 1909, 캔버스에 유채. /ⓒHSML
호아킨 소로야 ‘자화상’, 1909, 캔버스에 유채. /ⓒHSML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155번가에는 ‘작은 스페인’이 있다. 스페인 밖에서 가장 큰 스페인 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박물관&도서관(HSML)’이다. 그림과 조각을 비롯해 도자기와 고서(古書)까지 소장품이 총 50만 점을 넘는다. 이 거대한 박물관을 세운 사람은 아처 밀턴 헌팅턴(1870~1955)이다.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철도 재벌인 콜리스 헌팅턴(1821~1900)과 재혼하면서 재벌집 양아들이 됐다. 뉴욕 태생인 그는 어쩌다 스페인에 푹 빠지게 된 걸까.

성공한 ‘스페인 덕후’

HSML 설립자인 아처 밀턴 헌팅턴.
HSML 설립자인 아처 밀턴 헌팅턴.
시작은 사소했다. 1882년 열두 살의 헌팅턴은 어머니와 유럽 여행을 떠났다. 영국 리버풀의 서점에서 그는 스페인 집시들의 삶을 다룬 <진칼리>라는 책을 집어들었다. 소년은 책 속에 생생하게 묘사된 스페인의 일상에 푹 빠졌고, 어머니를 졸라 스페인 출신 가정교사에게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성인이 된 그는 철도회사의 경영 수업을 받는 대신 스페인으로 향했다. 1892년 처음 스페인 땅을 밟은 그는 스페인 중세의 영웅 엘 시드가 걸었던 길을 따라 부르고스에서 발렌시아까지 여행했다. 엘 시드의 서사시를 영어로 옮겼으며, 1898년에는 세비야 근처의 로마 시대 도시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190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헌팅턴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 돈으로 그는 스페인 ‘덕질’에 박차를 가했다. 1902년에는 세비야의 한 귀족이 모은 고서 1만 권을 통째로 매입했다. 스페인 학자 라몬 메넨데스 피달이 “이 컬렉션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건 우리가 쿠바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손실”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탁월한 문학 컬렉션이었다.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식민지 쿠바를 잃은 참이었다. 1904년 헌팅턴은 “누구나 공짜로 들어오는 박물관 겸 도서관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히스패닉 소사이어티의 출발이었다. 그렇게 HSML은 1908년 맨해튼 북쪽에 문을 열었다.
소장품을 관리 중인 기욤 키엔츠 미국 HSML 관장의 모습. /ⓒHSML
소장품을 관리 중인 기욤 키엔츠 미국 HSML 관장의 모습. /ⓒHSML
헌팅턴은 가급적 스페인 밖에서 그림을 샀다. 스페인의 보물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HSML이 소장한 작품들은 주로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의 갤러리스트들로부터 매입한 것이다.

소로야 그림 등 95점 전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HSML. /ⓒHSML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HSML. /ⓒHSML
1908년 헌팅턴은 런던에서 열린 전시에서 스페인 화가 호아킨 소로야(1863~1923)의 그림을 봤다. 발렌시아 바닷가의 햇빛을 담은 그림들이었다. 그는 이듬해 소로야를 뉴욕으로 불러 자신의 박물관에서 전시를 열었고, 356점이 걸린 이 전시에 한 달 동안 16만 명이 몰렸다. 헌팅턴은 이후 소로야에게 스페인 각 지방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 14점을 주문하기도 했다. 소로야는 1912년부터 1919년까지 스페인 곳곳을 다니며 이를 완성했다. 서울 전시에 나오는 소로야의 그림은 ‘헤레스 데 로스 카바예로스 후작 초상’(1914)이다. 헌팅턴에게 고서 컬렉션 1만 권을 팔았던 바로 그 인물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