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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빚은 스페인…찬란한 궤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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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미술 500년展
스페인 미술 500년展
바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스페인으로 실어 날랐다. 이탈리아, 플랑드르, 북아프리카의 유행이 흘러들었고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선 아메리카의 황금과 아시아의 향료가 오가는 항로의 중심에 섰다. 서로 다른 언어와 믿음이 충돌하며 무엇이 순수하게 스페인적인 것인지 가려내기 어려워졌고, 이 ‘혼종성’은 역설적으로 스페인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됐다. 사람과 물건, 종교가 어울리며 독특한 예술과 취향이 탄생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사가 프란시스코 칼보 세라예르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미술은 없다. 스페인에서의 미술이 있을 뿐.”
이 명제를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예술가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다. ‘엘 그레코’(그리스 남자)로 불리는 그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친 뒤 톨레도에 정착해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이 됐다. 문화적인 혼종성은 스페인 미술 속에 성과 속, 현실과 환상, 영광과 쇠락 등 상반된 요소를 한 화면에 나타내기도 했다. 이 미학적 긴장을 드러내는 핵심 열쇠가 ‘빛과 어둠’이다. 17세기 벨라스케스는 찰나의 빛으로 인물의 생명력과 절제된 고귀함을 극대화했고, 18세기 고야는 짙은 어둠 속에서 인간의 광기와 이성의 부재를 폭로했다. 반면 19세기 말 소로야는 빛 그 자체에 집중하며 지중해의 눈부신 볕을 화폭에 담아냈다.
가장 인간적인 신의 얼굴 성가족…죽음마저 냉소한 나의 장례식
5인의 거장으로 읽는 스페인 미술史
엘 그레코 ‘성가족’프란시스코 칼보 세라예르의 말인 “스페인에서의 미술이 있을 뿐”을 단 한 점의 그림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엘 그레코(1541~1614)의 1585년작 ‘성가족’만 한 작품이 없다. 그리스 정교회 성화(聖畵)인 이콘을 그리는 화가로 출발한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틴토레토의 색채를 흡수했고, 로마에선 미켈란젤로의 구성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1577년 톨레도에 정착하며 그의 화풍은 비로소 완성됐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카밀로 아스탈리 초상’
스페인 황금시대(Siglo de Oro)를 살았던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는 화가의 끝없는 향상심(向上心)을 보여준다. 고향 세비야는 신대륙의 부가 쏟아져 들어오던 유럽 최부유 도시였다. 스무 살 때 이미 고향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더 큰 무대인 마드리드로 향해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가 됐다.
“왕실 초상화는 벨라스케스만 그리라”는 어명을 받을 만큼 ‘왕의 남자’가 됐지만, 그의 시선은 다시 바깥을 향했다. 마드리드에서 당대 최고 거장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를 만나 충격을 받은 그는 이듬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연구하며 견문을 넓혔고, 찰나의 빛이 만든 인상을 화폭에 담아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량을 갖췄다. 200년 뒤 등장할 인상파 화풍을 선구적으로 시도한 그의 명성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눈여겨볼 포인트는 권력자의 위엄을 과장하거나 결점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스탈리는 붉은 추기경 복식을 갖췄으나 자세는 정돈돼 있지 않다. 비레타(각진 모자)는 비스듬히 기울었고, 몸은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프란시스코 고야 ‘돈 마누엘 라페냐’
미술 애호가들이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전쟁의 참상과 광기, 말년의 음울한 ‘검은 그림’으로 유명한 고야는 한 세기 앞선 벨라스케스를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꼽았다. 궁정화가로서 권력자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고 검은색을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아 있다. 그러나 고야의 어둠은 벨라스케스보다 깊고 불온한 곳을 향했다. 벨라스케스가 생생한 표정을 찰나의 순간에 포착했다면, 고야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늘을 끄집어냈다. 1799년작 ‘돈 마누엘 라페냐’는 고야가 궁정화가로 절정을 누리던 시절의 대형 전신 초상화다. 중요한 후원자였던 오수가 공작부인의 의뢰로, 훗날 본다드 레알 후작이 되는 인물을 그렸다. 2m가 넘는 거대한 화폭이지만 화려한 장식은 배제됐다. 옷과 배경 모두 어둡다. 이는 귀족이자 군인이던 라페냐의 신분 때문일 수 있다. 그림 속 라페냐는 왕실 근위대 군복을 입었고, 뒤편에는 사열한 병사들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라페냐의 모습이 위풍당당한 영웅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뻣뻣하고 앞으로 쏠린 자세는 나약해 보이고, 배경의 병사들은 막대인형 같다. 훗날 나폴레옹 전쟁을 목도하며 광기와 폭력, 죽음의 세계를 그리게 될 고야의 시선이 예고돼 있는 듯하다.
에르메네힐도 앙글라다 카마라사 ‘부리아나의 소녀들’
앞선 소개만 보면 스페인 미술이 어둡고 엄숙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로 넘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된다. 에르메네힐도 앙글라다 카마라사(1871~1959)의 회화가 그렇다. 검은 화면이 물러나고 빨강, 노랑, 초록이 강렬하게 부딪친다. 바르셀로나 출신인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그림을 배웠다. 파리의 밤거리와 카페, 여성들을 담은 그의 작품에는 세기말의 퇴폐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면 구성 덕분에 빈 분리파의 구스타프 클림트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부리아나의 소녀들’(1910~1911)은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여성을 다룬 작품이다.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스페인 여성의 전통적인 강렬함을 유럽 모더니즘 화풍으로 재해석하며, 스페인 미술의 혼종성이 20세기에 이른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미겔 빌라드리치 ‘나의 장례식’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묘한 제목의 작품을 꼽으라면 미겔 빌라드리치(1887~1956)의 ‘나의 장례식’(1910)이다. 스물세 살이던 화가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해 그린 그림이다. 고딕 양식의 삼면화 구조는 르네상스 제단화를 떠올리게 한다. 화면 중앙, 죽음을 둘러싼 조문객들의 표정이 독특하다. 슬퍼하기는커녕 조롱하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자화상은 그가 존경했던 벨라스케스를 떠올리게 한다. 소로야는 프라도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하며 깊이 연구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빛과 어둠’의 전통이 소로야에 이르러 완성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