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균 한국전력기술 사장(앞줄 왼쪽)이 지난 6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한-체 원전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제공
김태균 한국전력기술 사장(앞줄 왼쪽)이 지난 6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한-체 원전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제공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등 첨단산업 확산으로 전력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원전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원전을 제때 건설하는 것뿐 아니라 가동 중인 원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설계수명에 도달한 원전을 안전하게 계속 운전하는 것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내 원전 설계를 담당해 온 한국전력기술은 신규 원전 건설과 가동 원전 관리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토대로 원전 전 생애주기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해외시장까지 원전 설계 엔지니어링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설계 업무에 접목하며 엔지니어링 경쟁력 강화에도 나섰다.

◇ 신한울 3·4호기 적기 건설 뒷받침

국내 신규 원전 건설의 중심에는 1400메가와트(MW)급 APR1400 노형인 신한울 3·4호기가 있다. 두 원전이 준공되면 총 2.8기가와트(GW)의 설비가 새롭게 전력 공급 체계에 합류한다. 연간 예상 발전량은 약 2만358기가와트시(GWh)로, 지난해 국내 총 발전량의 3.4%에 해당한다.

종합설계와 원자로 계통 설계를 맡은 한전기술은 기기 제작사의 설계 자료를 조기에 확보해 후속 설계에 반영하고, 설계변경을 최소화하는 등 공정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 현안에도 대응해 기기 제작과 시공 등 후속 공정이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설계 업무를 수행한다.

올해는 건설 공정과 함께 향후 운영허가에 대비한 기술지원도 추진한다. 설계 자료 조기 확보부터 건설현장 기술지원, 후속 인허가 대응까지 주요 업무를 차질없이 수행해 신한울 3·4호기의 적기 건설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한국전력기술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서비스 ‘NEXA’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공지능 혁신대상’ 그랑프리 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한국전력기술 제공
한국전력기술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서비스 ‘NEXA’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공지능 혁신대상’ 그랑프리 대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한국전력기술 제공

◇ 원전 전 생애주기 기술지원

한전기술의 역할은 원전 준공 이후에도 이어진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의 설계사로서 발전소의 설계 정보와 계통·기기 간 연계성을 바탕으로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현안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최신 안전기준과 규제요건을 반영한 설비개선과 설계변경, 주요 기기 교체, 인허가 기술지원 등 가동 원전의 안전성과 운영 효율 향상을 위한 엔지니어링 업무도 맡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경수로 원전 24개 발전소를 대상으로 핵연료 교체주기를 기존 18개월에서 24개월로 늘리는 장주기 운전 적용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교체주기가 늘어나면 계획 예방 정비를 위한 정지 빈도를 줄여 기존 발전설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전기술은 원자로 노심 안전성 평가와 운전 조건 검토를 거쳐 필요한 설계변경을 수행하는 등 달라진 운전 조건에서도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설계 수명에 도달한 원전의 계속운전에도 이러한 설계 역량이 활용된다. 한전기술은 현재 계속운전을 신청한 국내 원전 10기 전체를 대상으로 안전성평가와 설계검토, 인허가 기술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발전소를 직접 설계한 경험과 가동 이후 설비개선을 통해 축적한 기술정보를 토대로 장기간 운전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필요한 설비개선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고리 3·4호기의 계속운전 심사와 한빛 1·2호기의 후속 인허가 일정에 맞춰 안전성 분석과 규제기관 심사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추가 운전에 필요한 안전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설비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등 운영사가 계속운전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공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 체코 넘어 해외사업 보폭 넓힌다

해외에서는 체코 두코바니 신규원전 사업이 본격적인 수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전기술은 올해 전담조직인 ‘체코사업단’을 신설하고 사업관리·설계 등 주요 분야별 전문 인력을 보강했다. 체코 현장에는 조정인력을 배치해 사업주와 현지 업체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행체계도 갖췄다.

한국전력기술 본사 전경. 한국전력기술 제공
한국전력기술 본사 전경. 한국전력기술 제공
체코 원전은 국내와 다른 유럽의 규제요건과 기술기준을 설계에 반영해야 하는 사업이다. 한전기술은 현지 전문 업체의 기술역량을 조사해 20여 개 협력후보군을 확보하고, 이 가운데 일부 업체와 설계 참여를 위한 계약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현지 업체와의 협업이 본격화함에 따라 설계결과물에 유럽의 규제요건과 기술기준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점검하는 품질·계약관리 체계도 함께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 축적한 원전 설계기술에 유럽 규제 요건과 현지 기술기준 대응 역량을 더해 향후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원전시장 진출 기반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사업주 및 ‘팀코리아’ 참여 기관과의 협업도 한층 긴밀해졌다. 정례협의체를 통해 설계문서의 이견과 미결사항을 조기에 조율하고, 설계·인허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현안을 사업 초기부터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수행체계를 토대로 올해 예정된 주요 설계 업무도 계획에 맞춰 진행하면서 체코 원전의 초기 설계가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체코에 이은 후속 해외시장 개척도 병행한다. 베트남 등 신규 원전 도입을 추진·검토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현지 정책과 산업 여건에 맞는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원자력 분야 대미 투자 등 미국 원전시장 활성화 기조에 발맞춰 미국 시장 진출 기회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체코에서 쌓는 유럽 원전 설계 경험을 교두보로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 원전 설계에도 AI 접목

원전 설계 방식도 바뀌고 있다. 한전기술은 원자력·플랜트 분야에 특화해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서비스 ‘NEXA’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전환(AX)에 속도를 내고 있다. NEXA는 방대한 기술자료의 검색과 요약, 문서 분석, 원자력 전문용어에 특화한 다국어 번역 등을 지원해 실제 엔지니어링 업무에 활용된다.

기능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여러 기능을 연계해 복합적인 업무를 지원하는 한편, ‘NEXA 코드’를 통해 자연어 명령만으로 소프트웨어 코드를 생성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한다. 한전기술은 기술자료 검토와 설계, 프로젝트 관리 등 핵심 업무에 AI 적용 범위를 넓혀 엔지니어가 고도의 기술적 판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김태균 한전기술 사장은 “원전 기술 경쟁력의 출발점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설계에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축적된 원전 설계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규 건설과 계속운전, 해외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AI 기반 설계 혁신을 통해 글로벌 원전 엔지니어링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한전기술은 1975년 설립 이후 원자력·화력·신재생 분야에서 플랜트 설계와 기술자문을 수행하며 성장했다. ‘휴머니어링’ 기업이념을 바탕으로 인간과 환경, 기술의 조화를 강조하는 에너지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전기술 임직원 2000여 명 가운데 약 80%가 기술·연구 인력이다. 석·박사급 연구자가 668명, 보유 자격증은 1200여 건에 달한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