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Mr. president).”

14일(현지시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심각한 표정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유튜브 생중계로 대담하고 있던 젠슨 황은 “대통령님이 아니었으면 안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President Trump)’이라고 적힌 삼성 갤럭시Z 폴드8 외부 액정에 마이크를 갖다 대자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인공지능(AI) 칩을 제조하는 사람이 나를 스피커폰에 연결할 줄도 모른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농담이 흘러나왔다. 곧바로 어조를 바꾼 트럼프 대통령은 “AI 사기극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4분간 최근 글로벌 테크업계 화두가 된 AI 속도 조절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생중계 기획됐나

트럼프가 비판, 젠슨 황이 맞장구…'AI 종말론' 막으려 뭉친 두 거물
이날 통화가 생중계된 ‘올인 서밋’은 보수 성향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4명이 진행하는 ‘올인’ 팟캐스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연 공개 행사다. 이 때문에 젠슨 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가 기획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주최 측은 “전혀 계획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진행자 중 한 명이 데이비드 색스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점,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가 준비 없이 생방송으로 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나리오가 잘 짜인 각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CNN에 따르면 AI 속도 조절론이 불거진 지난 주말 트럼프 대통령은 아일랜드 순방 중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참모진과 이와 관련해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AI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기존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하고 그 무대로 올인 서밋을 택했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AI 가속 페달을 밟은 것은 AI 호황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사흘 뒤인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미국을 AI와 암호화폐 세계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AI 규제를 해소하며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섰다. 대규모 AI 인프라 건설 사업도 밀어붙였다. 취임 다음 날 발표한 프로젝트가 5000억달러(약 678조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사업인 스타게이트였다.

◇AI 반대 여론은 커져

이런 AI 진흥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성적표’로 보는 증시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지수는 지난해 초부터 이날까지 약 36% 올랐다. 반도체, 에너지 등 기술주가 상승세를 이끌었다. 그랬던 종목이 AI 속도 조절론이 제기된 후 처음 열린 이날 장에서 일제히 하락했다. 엔비디아(-3.36%) 인텔(-5.59%) 브로드컴(-4.77%)이 포함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5.86% 급락했다. 속도 조절론을 틀어막아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대규모 AI 인프라(데이터센터)가 급성장해야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팔리는 젠슨 황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 조절론을 받아들일 경우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전날 “미국이 AI 안전을 명분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을 억제하려고 한다”고 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앞지르고 AI 기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는 게 커지는 대중의 우려를 해소하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커지는 AI 반대 여론에 맞서야 한다는 부담은 있다. 퓨리서치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AI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기대보다 걱정이 크다’는 의견은 52%, ‘기대가 크다’는 응답은 9%로 나타났다. 이에 미국 정치권에서도 여론을 이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15일 AI 안전단체 미래생명연구소가 주최하는 행사에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민주당·버몬트)과 함께 참여한다. 정계 좌우 극단의 인사가 반(反)AI·데이터센터 여론을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