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도는 없다는 착각
정치권에는 자기 진영만 바라보며 “중도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도가 없다면 반복되는 정권교체와 대통령 지지율 급변을 설명하기 어렵다. 선거의 승패는 고정 지지층보다 정당과 정책을 옮겨 다니는 유권자가 좌우한다. 중도는 없는 것이 아니라 양극단의 큰 목소리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중도는 진보와 보수의 산술적 중간도, 소신 없는 기회주의도 아니다. 시장경제를 지지하면서 불공정에는 시정을 요구하고, 복지를 확대하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태도다. 진영의 구호보다 정책의 비용과 성과로 판단하는 유권자가 중도다.

중도는 권력의 과잉을 막는다. 진보정권이 시장과 재산권을 지나치게 억압하거나 보수정당이 헌정질서와 합리성을 벗어날 때 지지를 거둔다. 중도는 정치가 상식의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균형추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후보가 “중도는 없다”며 집토끼 결집을 주장한 반면, 김민석 후보는 합리적 보수까지 포용하는 ‘중원 획득’을 내세웠다. 김 후보의 승리는 민주당 내부도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신호다.

그러나 선언과 실천은 달랐다. 당대표 선거가 끝나자 정권은 중도·보수에 문호를 넓히기는커녕 집권 초기 탕평의 상징이던 인사마저 정리하고 진보 진영 결속으로 선회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가 논란 끝에 사퇴에 이른 과정은 인사 원칙의 혼선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집토끼를 향해 좌회전했다가 민심이 악화하자 급히 되돌아선 셈이다.

정책도 다르지 않다. 장기 연체채권 매입과 원금 감면, 다주택자 세금·대출 규제, 공공 중심 주택 공급은 국가 개입과 재분배에 치우쳐 있다. 서민 보호라는 취지와 별개로 성실 상환자의 박탈감, 도덕적 해이와 민간 공급 위축이라는 부작용은 외면하고 있다.

이재명식 중도실용의 문제는 정책과 인사에서 좌회전했다가 여론이 나빠지면 우회전하는 ‘지그재그’를 중도로 포장한다는 데 있다. 시장친화적 발언을 몇 마디 덧붙이거나 좌우 인사를 번갈아 기용한다고 중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도는 자유와 책임, 성장과 분배,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일관된 원칙으로 조화시키는 국정 철학이다.

국민의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장동혁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을 앞세워 강성 지지층 결집에 치중하고, 부정선거론과 ‘윤 어게인’ 세력에 명확히 선을 긋지 못한 채 계엄과 탄핵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1야당이 음모론과 옛 권력의 정당화에 머문다면 정책 대안도, 국민이 안심하고 권력을 맡길 수권 능력도 보여줄 수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서고 중도층 지표도 일부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한국갤럽과 전국지표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상당한 격차로 앞섰다. 조사 결과가 엇갈리고 국민의힘이 중도를 향한 노선 전환이나 설득력 있는 정책 대안을 보여준 것도 아닌 만큼, 현재의 상승은 정부·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나 보수층 결집에 따른 일시적 반사이익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이를 자신의 변화에 대한 지지로 오인한다면 반사이익조차 오래가지 못한다.

열성 당원은 당권을 만들지만 정권은 중도가 결정한다. 민주당은 좌우를 오가는 전술이 아니라 일관된 중도지향적 정책을 보여야 하고, 국민의힘은 부정선거와 계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토끼만 바라보는 정당은 당권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 중도를 얻는 것은 선거 기술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려는 정당의 최소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