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형자산 시대, 생산성 반등을 위하여
저출생 고령화가 본격화하면서 더 많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 성장하던 한국 경제의 성장 방정식이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같은 자원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를 측정하는 총요소생산성이다. 최근 정부의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와 국민의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세는 점차 둔화하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경제의 생산성이 개별 기업의 혁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노동과 자본이라도 어느 기업에 배분되는지에 따라 경제 전체의 산출은 크게 달라진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자본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자원을 붙들고 있다면 기술 수준이 높아져도 우리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오르기 어렵다.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비효율적 배분이 제거되면 얻을 수 있는 재배분 이득은 2003년 57.6%에서 2023년 81.0%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장기에 걸쳐 자원 배분 효율성이 오히려 저하됐음을 뜻한다. 이로 인해 2003~2023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연평균 약 0.7%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이 약 3.4%였음을 감안할 때 상당한 손실이다.

문제는 이런 비효율성이 무형자산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공장, 설비와 같은 유형자산에서 기술, 데이터, 브랜드, 조직 역량 같은 무형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기업 부문에서도 무형자본이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23.1%에서 2023년 36.6%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무형자본 투자는 1999년 대비 약 4.7배 증가해 유형자본 투자 증가율 2.9배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금융은 이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전통적 금융은 담보, 업력과 과거의 현금흐름을 중시한다. 반면 무형자산은 가치평가가 어렵고 담보로 잡기도 쉽지 않다. 그 결과 생산성이 높아도 업력이 짧거나 비상장 상태인 무형자산 중심 기업은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하지 못한다. 따라서 무형자산 집약 산업군의 비효율성은 주로 한계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며, 저업력·비상장기업에서 두드러진다.

자원 배분 왜곡은 기업 간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내부에서도 자본이 가장 생산적인 부문으로 배분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학계의 연구는 대기업 내부 자본시장에서 본사와 사업부 관리자 간 정보 비대칭이 존재할 때, 사업부가 비용을 과장 보고하고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흥미로운 점은 국제무역과 경쟁이 이런 내부 왜곡을 줄인다는 것이다. 재벌 중심의 기업 생태계와 주력 분야에서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정책적 과제는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자본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금융의 평가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첫째, 무형자산 가치평가와 공시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특허, 소프트웨어, 데이터, 조직 역량이 기업가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시장이 판단할 수 있어야 자본이 움직인다. 둘째, 지식재산권(IP) 금융과 회수시장을 키워야 한다. 무형자산을 담보, 투자, 유동화 대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비상장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 경로가 넓어진다. 셋째, 정책금융은 규모보다 선별 능력을 높여야 한다. 담보 부족을 보완하되, 저생산성 기업의 생존을 연장하는 금융은 줄이고 민간 전문투자자와 함께 성장 가능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돈이 낡은 기준에 묶여 있어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데 있다.